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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신비적 탄생

by 후박나무 posted Aug 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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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의 뜨겁고 눅눅하던 바람의 결이 한결 서늘해져 지낼 만하더니, 내일부터 다시 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이제 기댈 곳은 태풍‘솔릭’ 뿐이다. 우이령엔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었다. 그래도 세월은 가고 있다. “꽃 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몸이 불편하기 전엔 가끔씩 교보문고나 씨네큐브에 들러 세상구경도 하곤 했었는데, 이젠 행동반경이 많이 줄어들었다. 교보빌딩에 긴 현수막에 쓰여 있던 ‘카피’가 생각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대산 신 용호 선생, 교보문고 설립자 말씀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가톨릭교회에서 오래전부터 쓰던 말이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성사는 교회를 만든다.” 또 이런 예도 있다. 한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물론 특정한 브랜드의 아파트 광고다. 얼마나 소유했는가가 당신의 정체성이라는 노골적인 말인데, 원래는 은수자가 사는 곳(내적환경)의 중요성을 표현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어디에서 사시는지 말해주시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소. 내면의 사정이 고요와 침묵인지, 온갖 소음과 망상인지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 결정된다고.

 

각 복음서는 각기 자신을 대표하는 상징이 있다. 마르코는 사자, 마태오는 사람, 루카는 황소, 요한은 독수리다. 요한복음은 자주 공관복음이 전하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이야기를 전제하고 그 위에서 진도를 나가는 것 같다. 그러기에 높이 날며 멀리 보는 독수리라는 상징이 걸맞다.

 

마르코 복음을 따르는 마태오와 루카의 공관복음에는 수많은 비유가 나오는데 전반부의 대표적인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고, 후반부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다. 예수님은 이 두 비유로 자신이 생명을 바쳐 한 일 전부의 의미를 밝히며 그 일을 계속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한다. 씨뿌리는 사람이 뿌리는 씨는 말씀으로 자라 곡물이 되고 빵이 되어 사람들을 양육한다. 또한 씨는 포도열매를 맺고 포도주가 된다. 포도주는 정의와 공정이라는 소작료를 요구하는 예수의 피가 된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이 둘을 하나로 연결하여 성체성사를 제정한다.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있었던 일을 이미 다 전제하고 그 바탕위에서 예수님이 긴 연설을 하게 설정한다. 다 알다시피 요한복음의 프롤로그, PROLOG 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말씀이 살과 피가 되셨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는다 함은 그분과 동화되는 것이리라. 어떻게?

 

14세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스승으로한 라인 강 신비학파가 있었다. 그중 요한네스 타울러는 우리 내면에 말씀이 탄생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었고,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타울러에게서 신비적 탄생을 배웠다. 성탄 캐럴이 노래하듯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 주의 부모 홀로 깨어…….”, 우리의 내면이 거룩하고 고요할 때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탄생하며, 의롭고 거룩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심을 그 목적으로 지향하기만 한다면, 매일, 그리고 매순간 자신들의 내면에서 이 매혹적인 탄생이 일어남을 체험하게 되리라는 예고이다. (참조: 마음에 이르는 길, 2013 오상영성원. p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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