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거듭남!

by 후박나무 posted Dec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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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태가 어떻하더라도 관계없이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로 작정하시고 다시금 우리안에 한 아이로 강생하신다. 우리의 누추함은 대부분 그럴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바리사이적 교만은 자기의(自己義) 의 실추를 인정하기 어렵다. 주변의 이목을 두려워하여 밤에 몰래 예수를 찾아온 니코데모처럼 나도 거듭나고 싶다. 그 거듭나는 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안에 탄생하신다는 아기를 잘 받아들이고 키워내는 것이다. 요한네스 타울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로서 그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도와줄겁니다. “마음에 이르는 길”에 수록된 글을 여기에 옮김니다.

 

 

JOHANNES TAULER

CHRISTMAS SERMON 1

박태원 신부 번역

 

14세기 독일 라인 강변의 신비가 그룹에 속하는 요한네스 타울러는 십자가의 성.바오로가 아주 좋아했고 영향을 많이 받은 분입니다. 헨리 수소와 함께 마이스터 엑크하르트의 애제자였던 타울러는 스승과는 달리 신플라톤학파의 형이상학에 경도되지 않고 영적지도자, 사목자로서의 길을 추구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엑크하르트가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았던 것도 큰 이유일겁니다.

타울러는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탄생과 죽음, 무화와 신화 등을 자주 언급합니다. 이와 비슷한 반향은 그대로 십자가의 성. 바오로의 가르침에서도 발견됩니다. 이제 곧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요한네스 타울러의 성탄절 강론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Puer natus est nobis et filius datus est nobis (Is 9:5)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이사야 9:5)

 

오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 가지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이 세 탄생은 우리들의 가슴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며 천상으로 고양시켜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 의미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장 장엄한 첫 번째 탄생은, 천상의 성부께서 위격으로는 구분되나 본성으로는 일치하는 당신의 외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두 번째 탄생은 모성의 풍요로움이 순결한 동정녀에게 성취된 것입니다. 세 번째 탄생은 하느님이 은총과 사랑에 의해 의로운 사람들의 영혼에 매일 매순간마다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거룩한 세대의 미사에서(밤 미사, 새벽미사, 낮 미사) 우리가 보게 되는 세 가지 탄생입니다.

 

한밤의 어둠속에 거행되는 첫 번째 미사는(밤 미사)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나의 아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밤 미사는 우리가 알 수없는 신성의 비밀 속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탄생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미사는 “오늘 큰 빛이 우리에게 비추인다.” 라는 선포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성화된 인간본성의 광휘를 뜻합니다. 이 신비는 부분적으로는 알려졌고 또 부분적으로는 아직도 알 수가 없기에, 새벽미사는 밤의 어두움에서 시작하여 낮의 밝음으로 끝납니다.

 

세 번째 미사는 한낮의 밝음 속에서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알리며 거행됩니다. 이 말씀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심을 그 목적으로 지향하기만 한다면, 매일 그리고 매순간 자신들의 내면에서 이 매혹적인 탄생이 일어남을 체험하게 되리라는 예고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이러한 출생을 체험하기위해서는, 마음을 돌려 내면을 향해야 하며 우리의 모든 능력들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역으로 기능해야만 합니다. 그때 하느님은 당신자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주실 것이므로, 하느님의 이 선물은 우리가 이제껏 소유했던 어떤 것보다 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성서에 씌어있기를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했는데, 그 뜻은 이를테면 그분이 우리의 것이란 뜻입니다. 그분은 모든 방식을 뛰어넘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속합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끊임없이 언제나 낳으십니다. 그것이 세 미사 중 마지막 미사에서 언급하는 바로 그 매혹적인 탄생이며 우리가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탄생입니다.

 

우리 안에 이 탄생이 이뤄지고 그에 합당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먼저 첫 번째 탄생-부계의- 성부께서 그의 아들을 영원 속에 낳았던 그 탄생을 숙고해야 합니다.: 성부의 차고 넘치는 거룩한 선성은 인간적인 모든 방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넘치는 선성은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고 당신자신을 영원히 쏟아 부으며 통교합니다. 이런 연유로 보에씨우스와 성.아우구스띠누스는 하느님의 본성과 특성은 당신자신을 쏟아내고 통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당신자신을 거룩한 위격으로 분출시키시며 그 다음으로 창조물에게로 쏟아내십니다.” 성.아우구스띠누스는 다시 “하느님이 선하시기에 우리는 존재한다. 피조물이 지닌 어떤 선이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본질적인 선성에서 나온 것이다” 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부계적인 출생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성부께서는 한 존재로서 자신의 거룩한 지성을 당신자신에게로 돌리심에 주목합시다.(역주: 이를테면 눈이 눈을 보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분열되어 이 마음이 저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 자체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명료하게 영원한 존재인 당신존재의 심연을 꿰뚫어 보십니다. 이렇듯 순수한 자기이해를 통해 그분은 자신을 한 말씀으로 발하십니다.: 그 말씀은 그분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분이 그것에 의해 자기 자신을 아는 행위는 바로 영원 속에서 아드님을 낳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본질적인 일치로는 당신 안에서 쉬시며, 다른 위격에게로는 흘러가십니다.

 

그렇게 그분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여 당신자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모상(그분의 아들)-그분이 알고 이해했던바-을 낳으면서는 밖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분은 온전한 자기-기쁨 속에 당신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은 곧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내면으로 향하고, 밖으로 나아가며, 다시 당신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다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상적인 궤적은 고상하고도 온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궤적은 끊임없이 그것이 출현했던 기원과 원천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인간의 궤적도 그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근원으로 다시 돌아갈 때 가장 고상하고 온전한 것이 됩니다.

 

이제 우리도 자신의 내면에 영적인 모성을 가지려한다면, 천상성부께서 지닌 독특한 특성인 이 거룩한 순환을 차용하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 역시 온전히 밖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서는 내면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영혼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이 셋은 복되신 삼위일체의 진정한 모상입니다 - 기억, 이해, 자유의지. 이 셋의 도움으로 사람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분에게 부분적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사람은 하느님이 부여하는 것과 하느님이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창조되었으므로, 이 능력으로 인해 사람은 영원을 관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의 가장 상위부분을 통해 영원에 접하는 반면 가장 낮은 부분으로 인해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힘 - 시간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 두 힘이 서로 얽힘으로 인해(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은 시간의 유한한 세계와 덧없는 사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덧없는 사물은 쉽게 영혼에게 다가오며,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어 사람은 영원을 벗어나 시간이란 유한한 세계로 향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위에 언급한 탄생이 일어나려면 역방향의 행동이 필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치 속에 힘이 있으므로, 어떤 흩어짐도 없이 영혼의 세기능이 내적으로 한데 모아져 결정적으로 내향을 해야 합니다. 과녁을 정확히 맞추고자 하는 사람이 정밀성을 더 높이기 위해 한 눈을 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그것이 일어났던 영혼(마음)에 집중합니다. 나무의 모든 가지들이 하나의 몸통에서 나왔듯이, 이 모든 것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영혼의 모든 힘은 그 터전에 모이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내향성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넘어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 자신의 의지와 욕구 그리고 세속적인 활동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아를 온전히 포기해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아야 할 것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열망뿐이어야 하며 그분을 위한 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높고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므로 그분의 일은 번성할 수 있고 그분의 탄생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고자하면, 한쪽은 수동적이어야 하고 다른 쪽은 활동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눈이 벽에 있는 그림이나 무엇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눈은 먼저 다른 심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귀가 이미 어떤 소리를 듣고 있다면,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짧게 말해 무엇이든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먼저 비워져야 하며 수동적이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점에 대해 성.아우구스띠누스는:“비우면 채워지고 네 자신 밖으로 나가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고결하고 숭고한 피조물이여 그분은 온전히 진실로 네안에 계신대 왜 밖에서 그분을 찾는가? 신성한 본성을 나누어 받은 여러분이 왜 피조물의 세계에서 헤매는가?” 라고도 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 깊숙이에 그 터전을 마련한다면 의심할바없이 하느님은 온전히 하늘을 기울여 그 빈 공간을 채우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것도 공허히 비게 놓아두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당신의 본성과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침묵을 지키셔야 합니다! 침묵 속에서 말씀은 발해질 수 있고 안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하느님은 침묵하셔야 할 겁니다. 침묵 중에 듣는 것 이상으로 말씀을 섬기는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비우신다면 하느님이 들어오셔서 여러분을 온전히 채워주실 것은 분명합니다.: 비움이 클수록 그를 채우는 신성은 더 커질 것 입니다.

 

이러한 자기로부터의 엑소더스는 모세오경 중 첫째권인 창세기의 비유로 잘 설명되어집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좋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그의 땅과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모든 좋은 것”은 그 안에 모든 좋은 것을 간직한 거룩한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분께서 떠나라고 하신 땅과 재물은 몸을 위한 세속적인 만족과 무질서를 말합니다. 친척이란 우리의 감각적인 본성의 경향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 집니다. 이들 또한 우리를 매혹시키고 영혼의 진보를 늦춰지게 하며 애증을 유발하고 쾌락과 슬픔, 욕구와 두려움, 걱정과 천박한 행동을 야기 시킵니다. 이러한 경향성들은 진정 우리들에게 가까운 친척이며 바로 그런 연유로 우리는 이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온전히 등을 돌림으로서 가장 높은 선인 거룩한 탄생이 우리들안에 이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지나치게 가정에만 가두어 키우면 외부세계엔 이방인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자연적인 경향성이라는 집에서 한 번도 떠나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진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본성을 넘어 가본적도 없고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 혹은 그들의 감정과 자극을 통해 아는 것을 넘어서는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감각적인 사물로부터 떠나보지도 넘어서 보지도 못한 이런 사람들은 신성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면 그야말로 낯설지 않을 수가 없을 것 입니다. 그들의 내면적인 터전은 마치도 빛이 한 번도 스며들지 못한 철의 장막안과도 같습니다. 덧없는 심사의 변화나 외부조건의 작은 변화에도 이런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자연적인 자아를 극복하거나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거룩한 탄생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 나 때문에 자신의 부모나 재산을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고 하셨을 때 이 사람들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첫 번째와 마지막 탄생, 그리고 어떻게 첫 번째 탄생이 마지막 탄생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밤 하느님의 아들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우리의 형제가 되는 두 번째 탄생에 대해 이제 말하고자 합니다. 영원 속에서 그분은 어머니 없이 태어났고, 이제 시간 속에서 그분은 아버지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마리아는 그분이 육으로 그녀에게서 태어난 것 보다 그분이 그녀의 영혼에 영적으로 태어나셨기에 더욱 복되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누구든 마리아에게서처럼 자신의 영혼에 그분이 숭고하게 그리고 영적으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녀를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어머니가 되게 하신 그 자질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방문했을때 그녀는 순결한 처녀였으며, 순종하여 약혼을 했고, 외부적인 사물에서는 격리되어 내면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그녀의 영혼에 낳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져야 할 영적인 어머니의 자질입니다.

 

첫째, 영혼은 순수하고 정숙한 동정녀야 합니다. 만약에 그 순수성을 잃었다면, 그길을 거꾸로 가서 다시금 순결하게 동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때)아무런 외적인 결실은 없고 내적인 결실은 풍부한 동정녀야 합니다. 이것은 동시에 외적인 관심에는 문을 닫고 주의를 많이 기울이지 않으며 외부에서 오는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온전히 거룩한 것으로만 향하고 있습니다. 내적으로 동정녀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왕의 딸로서의 모든 광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외적인 세계와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녀의 행동이나 생각, 태도 등은 내면화 되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는 위대하고 풍요로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이 결실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그분의 아드님 그리고 말씀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을 품으시는 그분입니다.

 

둘째로 성.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마리아는 순종하셨으며 우리도 그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변덕스러운 의지를 거룩하고 변하지 않는 그분의 의지에 가라앉혀서 우리의 약함이 강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마리아는 또한 내면으로 향했습니다. 진정 하느님이 우리에게 낳으시려면, 우리들 또한 세상과 거리를 두고 마리아를 모방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덧없이 산만한 마음을 피하는 것으로 되지 않고 내면적인 우리의 덕행으로서 가능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내적인 고요함과 평화, 감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물러섬, 고요한 피난처와 내적인 휴식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다음 주일 미사의 입당송 주제입니다: “모든 것이 고요한 침묵 중에 있을 때, 밤이 깊이 무르익었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씀께서 하늘로부터, 거룩한 왕좌로부터 내려 오셨다” 이 한밤의 침묵 중에 모든 것이 완벽한 정적 중에 있을 때, 우리도 침묵을 지키면 하느님께선 틀림없이 말씀하시고 그 하느님의 말씀을 진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 길을 비키기만 하면 그분은 꼭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에집트에 들어가실 때 모든 우상들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 우상들은 우리의 거짓된 신들입니다. 거룩한 말씀이 영혼 안에 즉각적으로 출생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은 아무리 그것이 좋고 선하게 보인다 해도 바로 우리의 거짓된 신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람을 집착하게 하는 모든 것을 심지어 그것이 어머니, 자매, 형제가 되더라도 잘라버리도록 칼을 가지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바로 그 일행(하느님 없이) 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적입니다. 비록 내적인 정적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다양한 모상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감추고 그분이 여러분 안에 탄생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때로는 인간관계를 단출하게 하는 것이 우리를 쓸쓸하게 하더라도 불구하고 그것은 거룩한 탄생을 위한 비옥한 토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면에 깊은 침묵을 기르고 자주 배양하십시오. 그리하여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 습관이 됨으로서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숙련되지 못한 사람에겐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숙련된 사람에게는 쉽습니다. 기술을 만드는 것은 습관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거룩한 탄생을 위한 자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영적인 모성을 갖게 되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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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마 신부님 기일

    오늘은 마 신부님 기일이다.   예전에는 연말이 되면 거리에 캐럴 송도 울려 퍼지고, 교우가 아닐지라도 무언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사는 일이 각박해져서인지 마음만 바쁜 것 같다. 우리 한국고난회로서는 박 도세 신부님이...
    Date2018.12.22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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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솔이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양양 삽존리 수도원을 다녀오다. 무리를 했는지 많이 힘들다. 멀리 강릉에서 차멀미까지 하며 온 솔이와 십자가의 길과 연못까지 낸 길을 걷다. 삽존리는 솔이 에겐 고향 일게다. 생후 2개월부터 살았으니……. 매일 밤 잠자리를 봐주고 ...
    Date2018.12.21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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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프레임

    좋은 책과 우연히 조우하거나 뜻하지 않게 석학을 만나 짧은 시간 내에 세상을 보는 눈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남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삶을 관통하는 잊지 못할 명대사가 있다. ...
    Date2018.12.18 Category복음 사색 By후박나무 Views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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