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사람(=이스라엘)들에게 가르치시고 주신 하느님의 뜻,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바탕은 바로 당신을 닮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가 '잘 되기를,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자유롭게 자유롭게 당신 안에서 잘 살기를 바라시기에 율법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망각하고 거짓된 길과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골수에 박히듯 반복적으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잔소리의 핵심은 바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듣고 실행하며, 이로써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체험하고 목격한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위대한 민족이 되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 될 것이다.>(신4,1.5.96.8)는 확약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서 하느님의 본래의 의도와 뜻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율법의 문자만 남은 꼴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화석화된 율법이란 단단한 담을 헐고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고자 분골쇄신하였기에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들려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습니다.>(Mt5,17)고 말씀하시는데, 그 완성은 문자로써 완성하려는 게 아니고 처음의 정신과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 곧 사랑으로 율법을 실천하는 삶과 사랑으로 율법을 가르치는 삶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기에,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사랑에서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사랑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5,1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율법의 실천과 가르침의 여부에 의해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갈라집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