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19.07.08 07:31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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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잊어버렸지만 오래 전에 보았던 음악영화를 보던 중에, 음악하는 사람들은 흔히 <저 사람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연주가가 자신이 연주한 곡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어, 단순히 소리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연주자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요즘 저는 매주 금요일에 방영하는 <슈퍼 밴드>라는 프로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재질과 열정에 놀라면서 가끔 그들의 연주를 보고 들을 때 정말이지 단지 소리가 아닌 음악을 듣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저 사람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말의 의미가 믿음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실체라고 봅니다. 믿음의 목적지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이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특정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교리나 신조를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 곧 예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오늘 복음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참된 믿음의 본보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여자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아 왔다는 이야기는 한시적 기간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앓아왔고 혈루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 불행한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부인이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5,25-26)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질병과 그에 따른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혈루증을 고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치료법이 없고, 만나보지 않은 의사가 없을 만큼 노력하다가 종내는 시간도 재산도 가족도 다 잃어버린 그야말로 쪽박신세였던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가 있었을까요? 그녀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고 오직 절망만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어찌 그녀만이 처한 상황일까요?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했듯 그녀의 절망처럼 모든 인간은 어쩌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고,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며 상황입니다. 곧 나의 모습이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의 이 죽음의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 수 있으며, 구원할 수 있겠는가? <절망의 끝>은 결국 <희망의 끝>으로 이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 여자는 절망 중에 있을 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군중을 뚫고 예수님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Mt9,21)하고 만졌던 것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내 병이 낫겠지.>하지 않고 <구원을 받겠지>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오늘 복음은 단순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를 치유시켜주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를 만난 것은 생명을 만난 것이요, 생명이신 예수를 만남으로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이 생명이신 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 그녀만이 사랑이시며 생명이신 분을 온전히 믿고 자신을 온전히 내 맡겼던 것입니다.

 

아무도 무슨 일이 <당신과 그 여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느끼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를 보시며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9,22)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믿음이란 무엇이라고요? 믿음이란 인격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님께 자신의 전 존재를 전부 드리고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며, 예수님의 인격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녀가 한 행동 <옷에 손을 대다. 만지다>는 행위가 곧 믿음이 요구하는 전적인 내맡김의 다른 표현이며, 그 옷을 만짐으로, <만져진 존재와 만지는 존재 사이의 소통과 교류 그리고 친교의 표현>으로 느끼며,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묵상해 봅니다. 우리 역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확고한 믿음으로 그분을 만집시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짐으로 그 분으로부터 구원을 체험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은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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