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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닛사의 그레고리

by 후박나무 posted Jul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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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야 끝난 거다” 라더니 올해 장마가 그런가보다. 힘겹게 버텨내어 장마가 끝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엊그제부터 다시 시작하는가보다. 어젯밤에는 간헐적으로 천둥, 번개와 세찬 비가 내리더니 날이 밝자 긁은 빗줄기가 계속 이어진다.

 

오늘의 모세이야기는 하나의 체험과 닛사의 그레고리를 상기시켜준다. 히브리인들에게 모세가 그렇게 위대한 예언자, 입법자로 기억되는 것은 방관자로 남고자하던 그들을 역사의 사건에 동참하게 하여 공동의 유산을 갖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전례는 언젠가 한번이라도 예수와 함께 겪었던 일을 올바로 기억하여, 지금 여기서 공동의 자산을 확인하는 것일 게다. 그리하여 교회는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성사는 교회(하느님의 백성)를 형성한다.

 

첫 번째 떠오르는 체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여, 서강대학교 실내체육관(?)에서 한국 수도자들을 만나던 날이다. 접견시간 2~3시간 전에 입장을 완료한 남녀 수도자들은 각기 수도회에 배당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보니 유독 체육관 1층의 어떤 자리만 훤한 것이었다. 그래 유심히 살펴보니 그곳은 봉쇄수녀님들에게 할당된 자리였는데, 수녀님들의 얼굴이 마치 모세가 그랫던것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도 한 달씩 침묵피정을 할 때 느끼는 거지만 마음속의 전쟁이 치열해질 때 한때는 눈이 번질거리고 어두울 때가 있는가 하면 눈이 밝고 반짝거릴 때도 있다. 마치 호롱불을 둘러싼 유리등의 그을음이 영혼의 전투 속에 닦여 내면에 계신 신성의 불빛이 별 장애 없이 바깥을 비추게 되듯이.

 

두 번째, 사람은 하느님을 찾는 존재로 삶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신국록 등에 명료하게 표현된다. 교부 신학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은 중요한 신학적 진술이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를 저술하면서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에는 빛, 구름, 어둠이란 세 길이 있다고 말한다. 빛의 단계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발견한다. 구름의 단계는 시나이 산을 오를 때 구름에 휩싸인 사건을 통해 말한다고 한다. 마지막 어둠의 단계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에 비로소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세 번째 단계인 어둠 속에서 계시하시는 하느님을 설명하면서 그레고리는 중세에 꽃을 피운 ‘부정 신학’의 문을 연다. 그는 말하기를 ‘열심히 노력해서 종교적으로 성장한 뒤 그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 실체에 대해 관상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고 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지성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 해서 모두가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돌아보면 그렇게 하느님을 만났던 순간들이 기억에 새롭다. 하느님을 보고 싶다는 그 열망이 잊지 못할 순간도, 나락의 심연도 맛보게 하며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진인(眞人)만이 진지(眞知)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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