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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모니카(서울)

 

세탁기를 바꿨다. 빨래들이 뒤엉켜 돌아가는 모습이 잘 보인다. 낱낱의 삶이 세탁기 안에서는 잘도 섞인다. 셔츠와 속옷이 양말과 수건들이 서로를 부비고 얼싸 안고 돌고 눕고 맞대거나 밀치면서 무엇보다 함께 비를 맞는다. 함께 운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엉킨 것들은 순해지고 깨끗해진다. 다소 너덜너덜해지기야 했겠지만 얌전히 한 장 한 장 빨랫줄에 걸린다. 다시 한동안은 살만하겠다. 대부분의 빨래는 ‘보통’ 코스로 가능하다. 삶거나 ‘찌든 때’ 코스도 있으니 때때로 이용해볼까.

 

올여름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두툼한 세 권의 책을 다 끝내고 수다도 나눴건만 여운이 길다. 노트 한 권에 두어 달 안나와 함께 한 기록을 남겼다. 들춰보니 뿌듯함과 자랑은 한나절쯤. 허무하다. 고작 소설 속 한 인물이 죽었다. 책이 뭐 대수라고. 그런데 많이 영향 받았다. 행복과 불행, 죽음과 구원이라는 주제. 살긴 살아야겠지만 죽지 못해 사는 건 아니지 않나. 안나의 죽음으로부터 삶의 위안 따위를 찾는 비겁한 생각은 말자.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다. 남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고 남의 구원이 곧 나의 구원이다. 얽히고설킨 인간사에 ‘나’의 독립이란 글러먹었다. 그런 꿈도 꾸지 말자.

기억하고 호명해주니 저승에서 안나는 행복할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사랑타령’이 끔찍하단다. 허나 어쩔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삶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지. 연민, 공감, 기도. 다 좋지만 사랑이 알파요 오메가다. 헌데 안나를 사랑할 수 있나. 그런 죽음을 사랑할 수 있나. 사마리아 여인을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유다와 빌라도를 사랑할 수 있나. 용서나 이해 말고 사랑.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솔직해지자. 다 못한다. 이걸 계명이라고 주시다니. 그분은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다 아실 텐데. 말만 번드르르하다. 사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할 때가 더 많다.

 

볕이 뜨겁다. 빨간 고추들이 가지런히 일광욕을 한다. 그 어느 몸매보다 핫하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릴 때부터 고단하게 살아왔을 그 몸들. 수십 번 농부들의 손길과 비와 바람과 햇볕으로 단단해진 그 몸들.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을 햇살 아래 온몸을 드러내야 한다. 바스락바스락 마른 몸이 될 때까지. 젖은 생의 축축함이 사라져야만 비로소 제대로 쓰일 수 있다는 것. 잘 마른 고추에서는 단내가 난다더라.

 

여름엔 방금 빨아 잘 말린 옷도 금방 축축해진다. 흉측하다. 사랑이 없으면 눈도 비뚤 귀도 비뚤 숨소리도 밥 먹는 모습도 싫다 했는데... 햇살 좋은 날 어디 돗자리 깔고 누워볼까. 단내 가득한 사랑 말고 다른 건 다 말려버렸으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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