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0.01.26 08:24

연중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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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오늘 주일 복음(Mt4,12~23)의 전반부는 지난 1월 6일(공현대축일 후 월요일 마태오4,12~17) 복음과 같고, 후반부는 1월 14일(연중1주간 월요일 마르코1,14~20) 복음과 동일한 내용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전 벳남에 살았을 때, 저는 사람들이 제게 <가장 베트남스러운 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멜콩 델타라고 즉각적으로 답한 까닭은 그곳에 가면 베트남 남부 특유의 공기가 있고, 아직도 시골스러운 운치가 남아 있으며, 순박한 남부 벳남의 촌사람들의 손맛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에서 기회도 기회였지만, 제가 일부러 몇 차례 찾아 간 곳이 바로 메콩델타 지역입니다. 넓고 때론 좁은 그리고 수 없는 지류가 모여 도도히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마치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세월도 마치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메콩강가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지만, 강물은 그와 상관없이 도도히 끊임없이 흘러 바다로 가리라 봅니다. 모든 것은 흐르고 사라지고 변하기 마련입니다. 오래 전 식당에서 우연하게 식사를 하던 중 <타르마>라는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는데, 그 때 들었던 표현 중에서 티벳어로 <佛法>이란 <바꾸다.>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티벳 승려들은 자신의 고통을 들이마시면서 자신의 마음을, 생각을 바꾸면서 세상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을 바꾸면서 남을 이롭게 하고, 자신이 변하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 결국 佛法도 복음의 첫 마디도 변해야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릴 수 있다는 초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벳남에서 살면서 병원 치료 차 귀국했을 때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젊은 한의사를 한 수녀님의 소개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베트남에 살고 있으면서 잠을 잘 때 너무 자주 다리에 쥐가 나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서 이유가 무엇일까 싶어서 찾아갔었지요. 그 때 그분에게 제 체질을 물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은 그의 말 한마디, <신부님, 고정된 체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인 즉, 나이가 들면서, 또 기후나 사는 장소에 따라서 체질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 하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한 가지만 변하지 않습니다.’>고, 정말이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고 그 만남의 첫 시작은 부모와 만남이지요. 그리고 형제와 만남이지요. 이는 주어진 숙명과도 같습니다. 아울러 살아가면서 선택에 의한 만남도 있습니다. 지난번 어느 분이 제게 답장으로 보낸 표현에 의하면,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인연이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인연이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상대방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하느님과 만남은 우리의 선택 보다 하느님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초대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라고 하면서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정채봉 시인은 <만남>이란 시에서 여러 종류의 만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요.>

 

오늘 복음(Mt4,12~23)을 보면 예수님과 첫 제자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남은 단지 첫 제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곧 우리 각자와 예수님과의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 제자들과 예수님의 만남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나의 만남은 과연 어떤 만남인지 물어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4,17)는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으로 당신의 일을 도와줄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그리고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십니다.>(4,18~22참조)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는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은 우연도 필연도 아닌 제3의 사건 곧 사랑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첫 제자들의 만남은 사랑의 만남, 은총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가난한 어부들이었고 부모와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만나야 할 시간을 모르고 있었지만 하느님은 그들과 만나야 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 가셨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곧 만남의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4,19)고 하시며 부르심의 목적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4,2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번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즉시성>과 <순수함>의 표출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즉시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영적 통찰력이라고 부르는 이 깨달음의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하는 영혼의 능력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말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즉시> 회개의 삶을 시작했듯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그 부르심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에 즉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쉬고 있는 신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많은 이들이 <먹고 살기가 바빠서요.>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신앙생활을 뒷전에 미루어 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에서 얻는 은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삶에 바쁜 것입니다. 바쁜 삶의 여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시간이 없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점점 사는 일에 여유도 잃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먹고 살만해지면 시간을 낼 수 있는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취미 활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삶 일수록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은총으로 살려고 할 때, 진리의 길을 찾게 되고,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되며, 삶의 의미와 존재이유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쉬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잘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부르심과 그 응답의 즉시성과 순수성의 또 다른 모델이지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깨달았기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3,8) 예수님께서 온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면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처럼(4,23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오로는 확신에 찬 권고를 코린토인들에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1코1,17)) 그렇습니다. 사도들을 부르시고 보내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선포하신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둠이 가고 빛이 왔으며, 어제가 가고 새로운 날이 왔기 때문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기 위해 이러저러한 것들을 버리고 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르심 받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머뭇거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알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필요 없이 삶의 터전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데 불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움켜쥐고 있지는 않는지요? 많은 핑계를 대면서 그것을 내 손에 움켜쥐고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무엇이 진정 주님을 따르는 데 필요한 것이고 어떤 것들이 필요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려놓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으면 하느님의 것을 얻게 됩니다. 내 것을 포기하면 그때 하느님의 것, 하느님 나라를 주십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었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근본을 바꾸어 놓는 대사건이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오늘 화답송의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고 외치는 까닭은 바로 <내 한 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을 우러러 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어둠과 죽음의 길이 아닌 빛과 생명에로 전환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에로의 진입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과거와의 단절이며 묵은 인연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힌 사람, 혈연과 지연, 학연 및 인연에 연연하는 사람, 자신 안에 갇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고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전부와 같은 배와 그물을 버린 사도들은 예수의 참 제자였습니다. 예수는 똑똑하고 유능하고 잘난 사람보다 무식하지만 단호하게 모든 것을 버릴 줄 알고 끊을 줄 아는 어부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전 메콩강을 유람하면서 들었던 예수의 부르심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제 마음에 꽉 차올라 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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