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0.01.27 10:15

연중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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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라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날개를 가지게 되었다.>(앙켈레베치)는 표현이 새삼 의미롭게 다가옵니다. 사실 사는 것도 그렇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동전을 봐도 앞면과 뒷면이 있고, 우리 몸도 앞뒤가 있습니다. 그리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또 슬픔이 옵니다. 기회가 오는 듯 싶다가도 위기가 물밀 듯 다가옵니다.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다가도 한 순간 몰매를 맞고 비난과 거부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상황이나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무게로 닥아 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자주 표현하는 것처럼, 곧 물 반 컵을 두고 한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다른 사람은 <물이 아직도 반 컵이나 남았네.>라고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네 삶에는 이처럼 항상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一喜一悲하지 않고, 위기가 기회이며 기회가 위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참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나 자신을 나 자신답게 사는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응답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초기 갈릴레아에서 초기 전도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수 많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구름처럼 몰려 왔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붙잡으러 찾아오기도 했었습니다.(Mr3,21참조) 더욱 오늘 복음(3,22~30)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낸다.”고도 하였다.>(3,2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히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로써는 참 어처구니없는 트집이고 생각이긴 하지만 그들에겐 아주 심각한 내적 혼란의 표현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는 데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우리에게도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눈을 가지고 있는가만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직설적으로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쫒아낼 수 있느냐?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3,23.26)라고 사실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보하십니다. 우리가 사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사탄은 결코 스스로 분열하고 자멸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한 민족이나 공동체 심지어 개인의 흥망성쇠와 파국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이며 불화에서 파생함을 우리는 보고 알고 있잖아요. 이처럼 대부분 내부의 분열로 망하며 끝장이 났는데, 이런 분열을 획책하는 어둔 세력이 바로 사탄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사탄은 사탄 끼리 싸우지 않음을 율법학자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에둘려 표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마귀들을, 더러운 영들을  쫒아내어라.>(Mt10,8; Mr7,7; Lk9,1)고 당부하시면서 마귀를 쫒아낼 수 있는 힘과 권한을 주셨으며, 당신 자신도 힘센 더러운 영들과 마귀들을 <묶어 놓고서>(3,27참조) 쫓아 내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더러운 영들과 사탄을 쫒아내는 것은 베엘제불이 아니라 당신 자신임을 표명하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사탄에 대한 승리는 사탄의 힘을 빌려 이룬 성과가 아니라 바로 당신과 성령의 힘으로 이룬 승리라고 밝히십니다. 성령의 힘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는 악령을 제압하고 추방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사탄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선 오늘 복음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의 핵심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3,28.29)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표현은 바로 예수님께서 모든 죄, 곧 우리들이 흔히 범하는 죄는 물론 신성모독죄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용서하지 않은 죄가 아니라 용서받지 못한 죄>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어떤 단서도 조건도 제한도 없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가 어떤 죄이며, 그 죄가 얼마나 큰 죄이기에 한 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에게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의문이 증폭되어 갑니다. 사실 말에 속지 않고 말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도 죽어야 하듯이, 성서의 표현도 죽을 때>만이 참으로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지 않는 죄가 없지만 용서하신다고 해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상대가 그 용서를 받지 않은 죄를 말하는 것으로 저는 알아듣습니다. 하느님의 용서의 한계나 제한이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의 닫힘과 거부이며, 이런 거부와 닫힘이 곧 그 사람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을 짓는 것입니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의지적으로 성령의 활동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3,30)고 예수님의 하신 일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두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Jn10,37.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쫒아낸다.>(3,22)라고 거부하고 배척하는 율법학자들이야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 곧 <용서받지 못한 죄>를 범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자기만이 옳다는 아집과 독선의 틀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큰 구원의 틀에서 지금의 우리네 삶과 모든 것을 성령의 활동과 숨결을 함께 호흡하고 수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본디 우리는 참된 진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를 찾고 싶기 때문에 진리이신 주님을 찾아 왔고, 그 분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리라.>(시8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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