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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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주일.jpg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연례 피정 중입니다. 오늘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문득 지난 2004년 메쥬고리아 성지순례를 가기 전 폴랜드 성지순례 중에 잠시 머물렀던 크라쿠프에서 가까운 라기에브니끼 자비의 수녀원, 자비의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가 생활했고 임종하셨던 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어쩌면 오랜 묵혀둔 수첩을 다시 꺼내보듯, 오래 전 기억을 떠 올리는 것은 그 어느 때 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감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아직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감염이 확산되어가고 있는 불안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주님의 자비>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들은 철저한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고 난 후에야 비로써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였습니다. 오늘 하느님 자비의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실패와 불신, 나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온 존재를 다 내어 맡기고,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며 기도하고 부활의 기쁨을 선포합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인생의 의문을 묻고 답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릇 깨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풀리지 않은 인생의 의문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하느님을 직접 뵙고자 합니다. 그분의 얼굴을 맞대고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하며, 삶 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혼돈에서 벗어나려 분투노력해왔던 것처럼 지금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욥의 의문과 갈망은 바로 우리의 의문이자 갈망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욥19, 27)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의 토마스 사도의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Jn20,25)고 하는 표현은 욥과 결이 다른 의문의 반향일지 모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감각으로 보고 싶음>은 단지 토마스만의 갈망이 아닌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체득한 우리의 본능적 욕구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오히려 어떤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은 채 <보고서도 무조건 믿지 않고, 확신이나 체험도 없으면서 믿은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토마스의 의심이나 회의를 탓하기보다 토마스의 신앙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이는 토마스, 아니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이해이며 배려입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20,27) 예수님은 토마스가 원하는 경험에 의한 증거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시면서도, 의심을 버리고 믿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더 이상 만지거나 손을 넣어보는 일을 포기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토마스의 응답은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표현처럼, 다음과 같은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진리이신 주님께 돌아서는 회개의 다른 차원일지 모릅니다.

 

토마스 사도는 자신의 이름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적어도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추호의 의심도 없는 믿음이란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느 정도는 회의하면서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노력합니다. 역설적으로 신앙은 회의이고, 이 의심이 믿음을 강하게 깊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건전한 회의나 의문을 거치지 않은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할 수 있음을 이번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신천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에, 토마스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토마스 사도를 신앙인의 참 표본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눈으로 보고 믿게 된 다음에 철저하게 투신하는 자세입니다.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실로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의 전부이신 주님께 전적인 신뢰와 의탁을 드립니다. 토마스를 철저히 변화시킨 것은 부활 이전과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려는 손과 옆구리의 상처들은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하느님의 확고부동한 사랑의 영원한 표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토마스 사도처럼 그렇게 온 존재로 투신하고 전적인 의탁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분의 사랑의 표지를 마음으로 보고, 그 사랑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할 수 있는 단순함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토마스를 만날 때 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20,19.26)라고 인사하십니다.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가져다 준 평화이며, 죽음을 통해 이루어 낸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인사를 하실 때, 거기에는 당신이 고통을 통해 성취한 용서와 화해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전적으로 다른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주신 평화를 잃지 않도록 늘 예수님의 확고부동한 사랑, 자비 안에 머물며 살아갑시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가 당신 자비에 의탁하겠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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