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0.04.26 10:59

부활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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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루가 24, 13 ~ 35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어젠 형제들과 함께 저희 수도원 정원에 장미를 심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니 오래 전 살레시오 원선호신부님이 작곡한 <엠마우스>라는 복음성가가 먼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이까 누추한 집이나 따스하오니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참 아름다운 곡이지만, 이젠 거의 불리지 않기에 무척 아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변화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부활을 체험하고 변화되어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승이신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신앙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믿고 따랐던 예수님은 누구였나, 스승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우리가 바라던 모든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을까?> 이는 곧 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동일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강도는 지금껏 살아 온 삶과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어제의 행복이 컸으면 그만큼 지금 겪고 있는 슬픔도 크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삶이 고달팠지만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짧은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했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가를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죽음은 엄청난 실망과 위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위기는 지나 온 삶의 행복과 비례합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신뢰하고 의탁할 사람이 없음을 느끼면서 익숙한 길을 잃게 되고, 깊은 좌절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죠. 곧 영적 죽음의 순간이며 이는 부활과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길을 가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클레오파이고, 이름 없는 다른 한 사람은 어쩌면 우리 각자일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해가 뜨는 동쪽 예루살렘을 향하기보다 해가 지는 서쪽 엠마오로 향하고 있다고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내적 상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태를 복음을 따라 갑시다. 먼저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Lk24,16)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영적 맹목의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함께 길을 걷고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했죠. 흔히들 사랑하면 눈이 멀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무엇도 사랑 보다 눈이 밝지 못합니다. 눈이 먼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집착이지요. 집착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자신의 행복에 꼭 필요하다고 잘못 믿어버린 나머지 거기에 매달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집착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행복의 대상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제자의 상태를 마르꼬 16, 12에는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지만, 그들이 기대하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 역시도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기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우리네 삶과 인생길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지만 늘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길을 걸어가면서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만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중요성,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상태를 복음은 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었다.>(24,17)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의 상태를 겪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슬픔과 눈물은 타인의 존재와 위로를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의 감정과 상처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이죠. 저의 경우엔 어머니의 죽음의 체험은 저에게도 동일하게 하느님의 현존과 위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여정에서 가던 길을 멈춰버리려고 했었으며 갈팡질팡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슬픔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을 때까지 길을 계속 걸어야 하며, 길을 걷다보면 길을 걸으면서 길을 찾게 됩니다.

 

아울러 제자들은 실망의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24,21) 기대가 크면 실망도 상대적으로 크기 마련입니다. 지나친 기대는 실망을 낫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루가 4장의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자렛에서도 다른 곳에서 행한 기적을 행하시기를 기대했지만, 에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더 중요하고 더 절실한 <영적 잡힌 상태에서 해방과 눈뜸 그리고 억압에서 해방>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망한 사람들은 예수를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으로 떨어트리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며 실망하고 더 나아가서는 거부하고 배척하고 죽이려는 게 인간의 나약함이고 어리석음일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체념과 인내로 모순과 슬픔 그리고 실망과 회의를 견디어 내도록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성령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사랑의 몸짓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다가오시어 탓하시기보다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신 다음 성경의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슬픔과 실망에서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신 방법은 바로 <들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을 들려주시자 제자들의 마음이 타오른 것처럼 우리 역시도 성경을 읽음으로써 동일한 내적 여정을 걷게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겠지만 성경을 읽음으로 처음에는 귀와 눈이 열리고 다음에는 마음이 뜨거워 질 때 변화는 기적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마음이 열릴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 주는 사랑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합니다.

 

이제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기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열고 기꺼이 자신을 변화하도록 이끌어 준 사람에게 <저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라고 초대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을 수용하고 초대할 때 이미 문제는 사라집니다. 그 때 초대받은 자가 초대하는 존재로 바뀌는 부활을 체험합니다. 초대받으신 주님이 이제 우리의 주인이 되시어, 우리를 당신 식탁에서 생명과 사랑의 빵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기꺼이 여러분의 집, 영혼으로 초대하시어 <저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십시오. 빵을 때어 나누어 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비록 오늘이 아니어도 이제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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