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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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식적인 환자인 나만 한가한 게 아니라, 젊은 수도자들도 꽤 여유롭게 지내는 것을 보니, 새 신부시절 거의 매일 밀려드는 피정자들로 파김치가 되던 때와 절로 비교된다. 그 때에는 사순절 4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피정이 있었다. 평일에는 하루피정, 주말에는 1박2일 피정. 아오스딩 신부님이랑 둘이서 번갈아가며 담당했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87년 당시 한국 순교자관구는 시카고 관구의 지부였으므로 관구장인 세바스챤 신부님이 방문하여 개인면담을 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사도직으로 인해 새로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 고장 난 녹음기 같이 산다는 불평을 주로 한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세바스챤 신부님은 질문을 하나 하셨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 나는 잠깐 생각한 뒤에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생각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행복한가 보다,” 고 답한 기억이 난다. 세월이 더 흐른 후 생각해보니 마음이 마비가 되어도 같은 결과다. 그러므로 행복한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증거는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느꼈던 때는 집안의 큰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우리 4형제가 라일락 향기 그윽한 뒤 정원에 함께 앉았을 때다. 중학교 1학년때...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그것은 하등 문제시 되지 않는다. 다만 어린나이에도 초상집에서 너무 기쁜 티를 내서는 안되었으므로 표정관리가 필요함을 의식했었다. 매일을 하루같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전전긍긍하며 불안 속에 살아오던 날들이 이제 끝나고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내게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때만 해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시킨 압제자가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서 긴 시간 괴롭힐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종교는 나름 “행복론” 이라 할 수 있다. 산상설교의 진복팔단 같이...행복론이란 제목의 책을 읽은 것은 중학교 때 카알 힐티의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지금 내게 남은 인상은 그냥 성실하게 FM으로 살라는 매우 고지식한 권고를 모아놓은 책이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는 세자요한의 제자들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물음을 던진다. 복음사가 요한은 물음의 층위와 답이 주어지는 층위가 사뭇 다르다. 그리고 이 간극은 예수와의 관계가 발전해 나아감에 따라 줄어든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기에 세 가지 소원을 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한결 같이 그 세 번의 기회를 모두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가! 세자요한의 제자들이 바랫던것은 “랍비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바꿔 말한다면 "임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임안에 쉬기까지는 제 영혼이 평안하지 않나이다." 이겠다. 복음이 전개됨에 따라 마침내 예수님과 하느님의 거처가 계시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노는 429년에 로마에 침입해 약탈을 하던 반달족이 북 아프리카 지방에도 침입해 히포시를 포위했을 당시 임종을 맞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노는 반달족의 포위공격으로 술렁이는 교우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 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 그러니 두려워말고 기뻐하라고!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온것 같다.  아우구스티노와 같이 진취적인 태도로 현실을 보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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