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0.08.14 21:01

일기일회(一期一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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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승천대축일인 내일은 39년 전 예수고난회 지원자로 수도생활을 시작한 날이다. 한줄기 시냇물로 예수고난회라는 보다 큰물에 합류하여 흘러온 세월이 도 종환 시인의 ‘멀리가는 물’ 같은 여정이었을까? 아니면 이사야의 고백처럼 바람과 같은 것이었을까?

 

* 멀리 가는 물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체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이사야 26: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공관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공적생활은 기간도 짧았을 뿐더러 지역도 몹시 한정적이었다. 여정이래 봐야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이다. 반면에 나는 안 가본 대륙과 나라가 없을 지경으로 쌀쌀거리며 돌아다녔지만 이사야의 말씀대로 내가 나은 것은 바람뿐, 세상에 인구를 보태지도 못한것 같다! 마르타에게 이르는 말씀이 새삼스럽다.

 

루카 10: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르타에게 이른 말씀은 일기일회(一期一會)와도 상통한다, 일본의 다도(茶道)에서 많이 쓰이는 말인데, ‘당신과 만나는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한번 뿐인 기회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최선을 다해 당신을 맞이하겠다 라는 의미로 차를 대접하는 사람이 손님에 대해 갖는 마음가짐을 나타낸다고 한다.

 

우리의 한 평생 동안 매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한 시간들이고,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은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평생의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한 것이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살아온 나날을 돌아볼 때 나머지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그 시간과 만남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홀로 신약성서의 산상설교를 읽을 때, 오랜 방황 끝에 혜화동 성당의 박귀훈 요한 신부님과의 만남, 잠실성당의 십자가에서 만났던 예수님, 서울 명상의 집에서 박도세 신부와의 만남. 나의 일상이 노냥 그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일순 없으나, 그것은 나머지 밋밋한 일상에 빛을 비추어주고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쯤은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게 되지 않는가! 어쩌면 ‘일기일회’는 이렇게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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