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도 포함하여 아무렇지 않게 ‘사돈 남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구 심 신부의 18번이 생각난다. “주여, 저 작자를 용서해주소서. 저 자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헤로데도 우리 대부분처럼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자기중심적인 자아가(I)―거짓자아- 자기를(Me) 그리 평가할 리 없다. 거짓이란 있는 것은 없다하고 없는 것은 있다고 하는 것이니, 거짓자아란 사실 존재 면에서 없는 것이다. 투명인간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려고 하니 모자도 마스크도 옷도 장갑도 하여튼 무엇이든 덧 씌워야 한다. 거짓자아에게 ‘있는 그대로’는 자신의 소멸이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우주의 중심까지 자처하던 거짓자아가 결정적으로 죽을 때, 크게 한번 죽어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대사일번 절후소생(大死一番 絶後蘇生).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 처음이란 바로 거짓자아가 죽던 그 마음자리다.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좌망- 자기중심적인 자아와 그로 빚어지는 많은 것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의 기도도 자주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강화하는 기회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기도가 마음의 단식(心齋)에서 출발하여 좌망(坐忘)을 거쳐 처음의 자리 조철(朝澈)에 까지 이르기를…….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