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67번째 생일을 지냈다. 요한 23세가 하신 말씀처럼 나도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 유난히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어제 아침이었다. 여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늦었더라도 뭔가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강물속으로 강은 흐르고” 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를 찾느라 원서를 거의 다 다시 읽게 되다. 기억이란 묘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기억은 살며시 그 외양과 색조를 변경시킨다. 거기에는 원작소설과는 다른 작품으로 오해하게끔 원본을 과하게 비튼 시나리오도 한 몫을 한다.
영화에서는 큰아들 노만이 어렸을 때 스코틀랜드계 장로교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건넨 말씀으로 영화의 앞 부분에 나온다. “노만,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우리 집에 일어났던 일들을 글로 써보렴.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글로 써보아야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사건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된단다.” 반면 원작에서는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왔던 성직자이며 아버지로서 그는 오랜 세월동안 둘째아들 폴의 폭력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며 부단히 그 의미를 찾는다. 오랜 고뇌 끝에 그가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둘째 아들, 또 자신과 화해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암시는 서른을 훌쩍 넘은 큰아들에게 글쓰기를 권하는 소설의 말미에서 드러난다.
“You like to tell true stories, don’t you” he asked and I answered. “Yes, I like to tell stories that are true.”
Then he asked, after you have finished your true
stories sometimes why don’you make up a story and the people to go with it?
“Only then will you understand what happened and why. ” It is those we live with and love and should know who elude us.“
20대 초반시절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 페이지마다 진실이 주는 맑은 기운은 나를 구원하는 힘이 있었다. 고백록을 읽으면서 나는 일찌감치 “나는 고백록을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작심했었지. 나 자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무런 숨김없이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에 감탄을 하고 힘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 자신을 그렇게 드러낼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많은 자서전이 “자기합리화” 나 “자화자찬” 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자주 본다.
그렇기는 해도 만년의 노만 맥클레인 아버지의 말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글로 써보아야 비로서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의미를 알게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의미를 찾으러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해내고 앞뒤 순서를 맞추어 나간다. 마치 조각 그림 맞추기를 하는것처럼....그 조각들과 파편들이 제 자리를 찾게딜때 어떤 그림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