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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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큰할메 마리안나와 작은할메 말가리다(=수녀라고 부르면 극구 수녀가 아니라고 손사레치셨죠.)자매가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영구 귀국하였습니다. 한 가족처럼 지낸 분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주기 싫다며 <사랑하는 친구·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새벽에 남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두 분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할 때>라며 <부족한 외국인이 큰사랑을 받았다.>고 오히려 모든 분들에게 감사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신학생 시절과 사제가 된 후에도 저는 할메들의 집에서 여러 번 휴가를 보내고 피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과의 만남이 주님을 따르는 새로운 여정을 더욱 굳건하게 걸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때론 할메들처럼 살지 못했기에 그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큽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치유하시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의 노벨상 범국민추진위원회가 2017년에 이어 작년 12월 24일 재결성되었다고 합니다.)
                                                                       

구약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慈愛)을 헤세드(hesed)와 라하밈(rahamim)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라하밈은 우리 정서(情緖)로 표현하자면 ‘애간장 녹다, 애간장을 저미다.’라는 뜻인데, 이는 라하밈이 모태에서 기인한 어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 단어를 쓸 때(호세11,1-8;이사49,14-19)는 하느님의 모성(母性)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느님의 자애로운 사랑인 모성을 예수님의 측은한 마음에서 봅니다. 이 측은한 마음(=측은지심), 곧 애간장이 타는 마음은 예수님의 백성을 향한 착한 목자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자기를 떠나 불행을 겪고 있는 상대방과 한 운명체가 될 정도(=同體大悲)로 이타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인 아가페(1요한 4,16)의 뿌리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고난받는 주님의 종으로서 나병환자의 운명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Mt8,17) 그래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이후, 예전처럼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습니다.>(1,45) 소외되었던 나환자를 치유하시면서 예수님은 그를 대신해서 소외되셨고 외딴곳에 머무르셔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의 마음을 닮는 길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측은지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다시 회복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일생 자신의 몸이 썩어들어가는 가운데 비록 고통을 느낄 수 없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힘듦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옛날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나병에 걸리면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사실 나병은 직접적인 전염이 되지 않음에도 예전에는 나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그 보다 나병에 걸리신 분들의 흉측한 외모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나병으로인한 육체적인 병고보다도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소외감과 관계의 단절이 그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기록된 아름다운 기적은 죽음과도 같은 소외와 단절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가서 치유받은 나병환자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의 치유 이야기는 당신께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치유해 주시고, 구원하실 것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유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선행되었던 점은 치유를 받고자 예수님께 다가온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나병환자가 예수님과 그 일행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을 만나면 종을 딸랑거리며 <나는 부정합니다!>라고 외쳐야 했으며 건강한 사람들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피했고 나병환자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올 때는 돌로 쳐서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 나병환자는 이런 것을 게으치 아니하고 예수님께 달려와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주님께 나아가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희망을 주님께 맡깁니다. 
                                                

더더욱 그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1,40)라고 간청합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음은 겸손한 자로서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뜻하며 이는 또한 자기 자신을 비우고 낮춘 마음가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 무릎 꿇는 행위는 결국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육체적인 아픔과 버림받고 소외당함으로 얼룩진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오롯이 바치는 봉헌이기도 합니다. 이 봉헌의 자세로 그는 지금껏 몸에 밴 자기 비하와 부정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길 희망하였고,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나병환자의 태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우고 낮출 뿐만 아니라 한없는 신뢰와 의탁의 자세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내어 맡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치유와 구원 여부는 철저히 예수님께 달려 있음을 자각하였기에 <하고자 하시면>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의 자애로운 마음에 자신을 내어 맡겼던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그가 <깨끗하게> 치유받은 바탕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이 결정하고 주님께서 이를 수용해 달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마음과 의탁하는 자세가 결국 버림받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설 수 있는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막장에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나병환자의 외침 앞에 마침내 예수님 마음이 움직입니다. 삶 자체가 슬픔과 고통 덩어리였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십니다. 그리곤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1,41)고 치유해 주십니다. 지난 월요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6,56)고 기록하였지만, 오늘 복음에선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은 손수 접촉하십니다.(1,41참조) 가엾은 마음이 드시고 직접 손으로 만지시고 말씀으로 치유를 선언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치유이며 구원입니다.
                                  

오늘 저 또한 치유 받은 나병환자처럼 주님 도움으로 다시 깨끗해지고 싶습니다. 다시 저의 순수했던 세례-서원-서품 때 가졌던 <맨 처음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깨끗하게 되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몸으로나 마음으로 깨끗하지 않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거기서 벗어나겠다는 결심과 주님 앞에 겸손되이 무릎 꿇고 자비를 청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최소한 이 태도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다음에는 주님을 신뢰하며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나병환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공개된 구원의 비밀이 아닐까요!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처럼 보입니까?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10,31)라고 사도 바오로는 권고합니다. 나환자의 나병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아름답고 살아있는 제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죄와 상처를 산 제물로 주님께 봉헌합시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1,41)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화답송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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