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여느 때처럼 새벽 3시다. 창밖에는 비록 배꽃은 아니지만 이조년의 시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를 떠올리기엔 충분하게 반개(半開)한 목련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나무에 핀 연꽃이라…….목련(木蓮)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ㅣ야 알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樣)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흰 꽃과 한 밤중이라는 이미지는 겹치는데, 다정이 원인이 되어 잠 못 드는 것과, 이유 없이 너무 일찍 깨는 것이 다르다.
강릉에 있는 솔 이와 2박을 하고, 옥계본당을 인연으로 알게 된 몇몇 교우도 만나 바람을 쐴 요량으로 월요일 길을 나섰다. 수도원 밖에서 간신히 한 주일을 지내면서 작년과는 판이하게 몸 상태가 나빠졌음을 본다. 2~3 번 가졌던 지인들과의 자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좌골 신경통인지 뭔지가 도져 짧은 거리도 걸을 수가 없어 민망스럽기도 하고 민폐가 말이 아니었다. 이젠 싫어도 서서히 뒤로 물러서야할 때인가 보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