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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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스카 성삼일의 첫날인 성목요일입니다. 오늘 성목요일 전례는 복음 낭독 후 세족례 그리고 최후 만찬 전례로 이어집니다. 오늘 전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참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시네.>라는 노랫말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세족례(요한복음)과 최후만찬(공관복음)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사랑’을 다른 시선에서 접근하고 표현하는 교회의 이해입니다. 강론 후 복음의 재현인 세족례를 거행합니다. 세족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현장 학습이며, 이 가르침의 주제는 바로 <섬김과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Jn13,1)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남아 있을 제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김없이 세족례를 통해 다 쏟아내려 하십니다. 이 사랑의 첫 몸짓은 <겉옷>을 벗으신 것입니다. 겉옷을 벗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본래의 신분이나 직책을 내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결코 겉옷을 걸치고서는 어떤 일을 해도 진솔성과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없으며,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로 비춰질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신 것입니다. 마치 계급장을 떼지 않고서는 동등한 시선에서 만나고 소통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겉옷을 벗는 것은 또한 섬김을 위한 전제조건이며, 무릇 섬김을 살려는 사람은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참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연극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겉옷을 벗음은 비움이며 낮춤이고 곧 섬김의 기본자세입니다.
                                                    

겉옷을 벗으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종의 자세로 제자들 앞에 엎드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Jn13,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다음에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은 포장되지 않은 길을 맨발이나 샌달로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더러워진 부분이 발이었기에 손님에 대한 환대의 표시로 발을 씻어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처럼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제자들에게는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으며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는 표현에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시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13,8)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기싸움이 아니라, 섬김을 받느냐 받지 않으냐는 것이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는 문제입니다. 아울러 세족례 후에 당부하신 말씀, 곧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실천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섬김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이 떠난 다음 제자들 상호 간에 누가 더 높고 낮은 가로 인해 불화와 불목, 갈등과 상처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배려의 차원을 담고 있다고도 보입니다. 섬김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발 씻김을 행하신 까닭은 더러운 길을 걷노라면 피할 수 없이 발이 더러워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더러워진 발을 씻겨줌으로써 발과 보이지 않는 몸 전체와 더 나아가서 내적인 더러움에서 깨끗함으로, 상처받음에서 치유받음으로, 죄스러움에서 죄사함으로 거듭나게 해주시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더러움과 수치스러움을 씻어주고 감싸주며 덮어 주려는 사랑의 본보기이었습니다. 즉 보이는 부분을 씻음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죄를 씻어주시는 聖事的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스승의 의도를 깨닫고 난 뒤 감사하며 그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고 스승의 본을 받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듯이, 섬김을 받아 본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 되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섬김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표지이며, 섬김은 참된 제자의 삶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주님처럼 끊임없이 낮아지고 비우고 죽지 않을 때는 결코 실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섬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11,26)고 당부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서로의 발 씻김을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섬김받음을 기억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따름노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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