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상의 집 현관에서 도봉산 쪽을 올려다보면, 19세기 미국 소설가 나타나엘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화강암에 새겨놓은 거대한 조각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마치 커다란 갓을 쓴 사람이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 뒤 모습 같다.
우리는 모두 백지상태에서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바탕그림위에서 보는 것이므로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이 형상이 김삿갓으로 해석될 것이다. 청명한 가을날 에는 뒤돌아서 가는 이의 삿갓과 후줄근한 도포자락이 서산에 기우는 붉은 해에 물들어 빛나다 이내 스러지는 장엄한 일몰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런날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허허로움도 더 깊었다.
그러고보니 환갑기념 수필집의 표지 사진은 북한강을 바라보며 선 필자의 뒷모습이고, 날개에 들어간 사진도 솔이와 산책하는 필자의 뒷모습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이 많이도 부담스러워 그런가? 혹시 브레히트처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때문은 아닐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作 <살아남은 자의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