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1.05.08 10:02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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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추억이 많은 달이라 결코 나로서는 ‘제일 좋은 시절’ 이라 할 수 없는 5월이 잘 가고 있다. 마치 빛바랜 오래된 사진처럼 날카롭던 경계는 무너지고 번져버려 주변의 인물이나 배경과도 그리 큰 위화감 없이 어우러져 보인다. 레이첼 카슨판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무분별한 살충제와 제초제의 오, 남용으로 인해 활기찬 새소리로 가득차야 할 봄 이 “침묵의 봄” 이 되듯이 후각적인 차원에서의 “침묵의 봄”이 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후박나무가 흰 꽃봉오리를 보기 좋게 이곳저곳에 내 미는 것을 보면서 은은한 후박향이 명상의 집 주변 멀리까지 퍼지고 있으려니 했다. 나는 파킨슨으로 후각이 약화되어 즐기지 못하지만 후박 향은 사람들의 마음에 여백을 갖게 하여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게 하리라 여겼다. 웬걸, 나중에 알고 보니 아예 향이 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후박도 모란이 되리라고 작정했단 말인가. 선덕여왕 설화와는 달리 모란도 엷지만 은은한 향기가 있는데, 날이 갈수록 외관만 닮고 자신만의 고유한 향은 잃어버리는 꽃이 많아지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더욱 짙은 향기를 뿜던 라일락, 아카시아, 후박나무, 등나무 등이 그렇다.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한겨레신문사에서 기획하여 7박 8일 동안 백두산 천지와 중국 땅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에 있던 나는 심양에서 그들과 합류하여 일정을 소화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그들 일행과 베이징에서 헤어졌다. 그때 만난 분들 중 기억에 남는 분들이 몇 있다. 다섯 수레 출판사 사장님(당시 신영복씨 번역으로 다이호우잉저 ‘사람아, 아, 사람아’를 출판하여 주가를 높이던 출판사였다.), 광주법대 교수님, 선암사에서 야생차 일을 하던 차 박사님등. 많은 분들이 제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으나 나만의 편벽 증은 언제나 그렇듯이 쉽게 곁을 주지 않아 귀국 후 차박사 만 한번 만나고 말았다.

 

보통 전통 녹차라 하면 연둣빛 고운 색에 감칠맛이 도는 차를 떠올리게 되는데, 차박사가 생산하는 야생차는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차였다. 차박사에게 그런 차는 유기농이라 할지라도 비료를 주어 길러 차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비료를 먹으려고 땅표면으로만 퍼지게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찻잎의 생산량은 많아지지만 녹차의 본래맛과 향을 잃고 얍삽한 맛과 색을 지닌 국적 없는 차가 된다고 한다.

 

선암사경내에 있는 차 박사의 차밭에 가보니 잡초가 우거져 차나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차 박사는 칡덩굴만 거둬내고 잡초는 그대로 두었다. 저렇게 치열하게 잡초와 생존경쟁을 벌여야 뿌리가 땅속 깊이 내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차나무 잎에 향이 나기 시작한다고 했다. 보성에서 생산되는 녹차나 제주녹차는 한결같이 다 연두색 일색인데 차박사의 야생차는 짙은 갈색이었다. 물론 독특한 맛과 향기가 있었고…….거의 모든 채소와 과일을 자연에 역행하여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제 철에 먹는 것이 오히려 드물 지경이니, 그 열매는 자연의 맛과 향을 모조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철없는 생활양식에 젖어 살다보니 우리의 존재자체도 철이 없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침묵의 봄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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