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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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많이 좋아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에 갈 수 없지만, 대신 인테넷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얼마 전 본 안소니 홉킨스이 출연한, 일명 ‘낯선 기억’이란 부제가 붙은 <아버지>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치매로 요양원에 머물면서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접어들어 ‘엄마, 엄마’라고 우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다들 영화관에 가서 영화가 다 끝난 순간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영화의 엔딩 순간 자막이 오르면서 어둠 속에 잠겨있던 극장 안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방금 본 영화 속의 세상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느낌을 안고 현실이라는 세상 속으로 하나둘씩 퇴장합니다. 그런데 가끔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자막이 다 끝났는데도 자리에 앉아 잠시 머물 때가 있습니다. 마치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보고 난 뒤 그랬습니다. 흑백이 마지막 장면에서 천연색으로 바뀌고서도, 흑백의 여운과 감동이 조용히 밀려오면, 그럴 때는 영화 속에서 본 장면들이 아직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현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속 세상이 아닌 일상이라는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화는 세상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현실은 아닙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 제1 독서 사도행전(1,9~11)에는 주님 승천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은 당황스러웠겠지만, 이는 제자들이 당면했던 ‘현실’입니다.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천상병 시인이 ‘귀천’이라는 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던 심정으로 아빠 하느님께 돌아가셨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하늘은 빈 공간이 아닙니다. 하늘은 바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서 우리가 머물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에 우리가 머물 자리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하늘로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머물 자리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이고, 살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요, 영광입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현실에 마음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의 승천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삶의 최종 목적지를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 믿음을 살아가는 현실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1,11) 이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눈으로 그분을 볼 수 없는 현실 안에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때가 왔음을 환기喚起시키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 우리 삶의 최종 목적지가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의 삶이 향하고 있는 최종적 미래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현실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인 우리마저도 눈앞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실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사랑보다는 소유하려는 삶의 태도가 신앙인들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면, 주님의 승천은 우리의 시선을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일깨우게 하는 은총의 사건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제의 기억과 내일의 기대를 지금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의 신비를 재현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오늘’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의 어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제라는 과거가 기억되고, 내일이라는 미래의 기대가 성취되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승천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시선이 향할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 줍니다. 서양 격언에 <코는 숫돌에 시선은 언덕에 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라는 숫돌을 갈면서도 우리의 시선은 항상 언덕 너머의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코와 시선이 숫돌에만 머문다면 우리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짓눌리게 될 것이며, 코와 시선을 모두 언덕에 두게 되면 현실 안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 뜬 것처럼 공허하고 맹목적인 삶이 되어버립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Mr16,15)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선포할 기쁜 소식을 통해 이제 영원한 현재를 지속해 가시는 출발점이며, 동시에 심판의 기준점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나날의 삶에서 그리스도 현존의 의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러한 그리스도 현존의 의미를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현실이라는 세상은 ‘사랑’을 열매 맺는 텃밭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와 현실 사이에서 어디에 눈길을 둘지 모르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1,8) 주님께서 앞서가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신명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끔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눈을 들어 당신을 바라볼지라도, 오늘이라는 현실의 쳇바퀴가 덧없어 눈을 들어 당신을 부를지라도, 당신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당신께서 앞서가신 길이 우리를 위해 마련한 축복의 길임을 믿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하며 지금 또다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
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에1,18)고 일깨워 주십니다.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 하늘나라임을 잊지 말고, 주님 말씀으로 살아갈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 속에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이 삶의 기쁨을 모르는 이웃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도 잊지 맙시다.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이웃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완성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계신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가신 하늘길로 나아가고 있는 저희 삶의 여정에서, 저희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마침내 아버지께 도달할 수 있도록 은총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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