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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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동적이기에, 끊임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기뻐하고 나누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삶은 사람과 자연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는 삶입니다. 그렇지만 제 삶 안에는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느슨하게 때론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살아왔다고 봅니다. 흔히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왜 우리를 지으셨을까요? 하느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을 읽든 신약성경을 읽든 한결같이 답은 관계입니다. 믿음이란 하느님과 살아있는 만남이며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풀어야 할 문제나 답해야 할 의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와 같습니다. 그 신비란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생생히 살아 있는 친밀한 관계 곧 사랑이시며 생명이신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산다는 것 곧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물과의 관계 매트릭스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후에 이어지는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령을 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이 어떤 삶인지를 밝혀 줍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하느님을 막연한 신비로 알아듣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는 방식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관계의 신비이며, 사랑의 신비입니다. 서로 전적으로 다른 위격位格을 지녔으면서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본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그러기에 삼위일체 신비는 우리 또한 다른 이들과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으로써만 배울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들어가야 하듯이 사랑을 배우려면 사랑의 삶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랑은 체험으로써만 깨닫게 되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됩니다. 사랑은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신비스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신비, 그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거룩함이고, 거룩함의 절정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나와 다른 인격체와 함께 나누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마틴 부버가 강조했듯이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마침내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당신과 같고 닮은 인간을 만드셨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 성자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아름다울 때, 세상은 구원될 수 있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보았던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완성은 관계의 일치에 있는 것입니다. 관계의 하나됨에 있습니다. 성령강림 전 들었던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완성을 통하여 이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은총을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8,14~15) 우리는 분명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사랑의 관계에서 그분들의 모습을 닮아 창조된 자녀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오묘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위대한 하느님 신비를 헤아려 알 수는 없지만, 실천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네 삶의 관계 안에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신비는 알 수는 없다는 의미라기보다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보기에 사랑의 체험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신비에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Mt2819) 하신 것도 바로 이 사랑과 일치의 신비를 닮은 삶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관계의 삶이고, 삶은 믿음의 실천입니다.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한은 다름 아닌 사랑의 능력이었듯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일은 사랑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 사랑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신학은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생명과 사랑의 에너지이신 성령과의 관계들입니다. 삼위일체는 위격 간의 사랑의 과정이며 각 위격 간의 관계들 사이의 교제입니다. 이 셋은 서로를 소멸시키지 않기에,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하느님을 생각할 수 없으며,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며 불합리합니다. 하느님은 오지 사랑만 아시며 항상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사랑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살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에 대한 넘쳐흐르는 하느님 구원 경륜의 물레방아를 되돌릴 수도 없고 늦출 수도 없으며 제한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 물레방아는 오직 영원히 한 방향으로만, 즉 더욱 많은 생명과 더욱 창조적인 생명 그리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반대편에서 물이 튄다고 하더라도 그 일정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하느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지금 주어진 관계를 사랑으로 넘쳐나도록 사랑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사랑으로 현존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복녀 성삼의 엘리사벳의 노래를 보냅니다. <흠숭하는 나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제가 제 자신을 온전히 잊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치 제 영혼이 이미 영원 안에 머무는 것처럼 당신 안에 자리하도록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제가 느끼는 평화를 깨트리거나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매 순간 당신 신비의 심연에 보다 더 깊이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영혼을 평화롭게 하시어 당신의 하늘이, 당신이 사랑하는 거주지가, 그리고 당신이 쉬시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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