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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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을 해 보신 분은 아시리라 봅니다. 요세미트 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세코이아 국립공원에는 그 이름처럼 세코이아 나무로 유명한 공원이지요. 그런데 이  세코이아(Sequoia)라는 나무는 이천 년을 넘게 살며, 높이는 80미터, 둘레는 30미터, 무게는 2,500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연구하면서 발견된 중요한 점은 나무의 뿌리가 깊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뿌리는 깊지 않지만, 뿌리가 사방으로 넓게 뻗어있어서 다른 나무와 서로 얽히게 마련이고 이로 인해 강풍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높고 넓게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 나무 크기에 반해 그 씨는 무척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지요. 매년 봄이 되면 거무튀튀한 나무에서 형형색색의 꽃과 어린 연두색의 새순이 터져 나오고 가을이 되면 달콤한 열매가 맺힌다고 합니다. 자연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이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자라나는 씨의 비유’(26-29절)와 ’겨자씨의 비유’(30-32절)를 한꺼번에 들려줍니다. 비유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앗과 같이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낟알을 맺는 이삭으로 성장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어느 씨앗 보다도 작은 것이지만 땅에 심어지면 새들이 둥지를 틀고 그 그늘에 쉴 수 있을 만큼 큰 푸성귀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비유의 특징은 시작과 끝의 대조, 작고 하찮은 것에서 시작하여 놀랍고 엄청난 결과로 끝맺는 대조(對照)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이해하기 한결 쉬워지고 더 빨라집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 떨어진 씨앗을 제외하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그 토양의 조건에 따라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질 경우를 전제하고 볼 때, 세 가지 비유를 모두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세 가지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씨앗(seed)’과 ’성장(growth)’과 ’열매(fruit)’입니다. 이 셋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요소들로서 씨앗은 시작을, 성장은 과정을, 열매는 마지막 결과를 뜻합니다. 시작은 어떤 경우에든 작고 미약하기 마련입니다. 허나 마지막 결과인 열매는 놀랍고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상응하는 성장은 사람의 머리로는 잘 파악할 수 없는 신비에 덮여있고 가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애초엔 작고 미약한 복음의 씨앗과 같이 시작하지만 어떤 누구도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성장 과정을 거쳐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하느님 나라로 완성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서,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된다.>(4,28)고 강조하는 것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농부와 아무 상관 없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4,27)는 점입니다. 물론 농부의 노력이 성장과 결실에 영향을 주겠지만, 뿌려진 씨가 자라는 것은 씨를 뿌린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4,28) 싹이 터서 낟알이 맺히기까지 질서 정연하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 때에도 하느님은 항상 질서 있게 하나하나 창조하셨고 그 질서를 유지하셨습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잡아주셨고 그것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잘 자라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실 아기들이 자고 일어나면 키가 쑥쑥 자랍니다. 어떻게 자라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키가 크고 자랍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머리카락도 그렇습니다. 언제 어떻게 머리카락이 자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 달이 되면, 머리를 손질해야 하기에 이발소나 미장원에 가야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듯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속성은 <겨자씨와 같다>(4,31)는 것입니다. 겨자씨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맨 처음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시고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아니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세워진 하느님의 나라 자체이십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어떻게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먼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 특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에게서 제자들과 함께 시작한 하느님의 나라는 조금씩 전파되고 확장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이 하느님의 나라는 열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예수님은 생애 동안 겨자씨와 같이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공간에서 활동하신 미미하고 작은 존재였으며, 또한 당신의 뒤를 이어 이 세상에 파견된 열두 제자들의 존재 역시도 겨자씨와 같이 작고 나약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 작은 공동체가 어떻게 크게 자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열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가 자라는 것을 매 순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겨자씨는 역사 속에서 자라왔고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성 생활이 얼마나 자라는지 금방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뿌려진 겨자씨처럼, 우리가 그 말씀의 씨앗을 정성껏 가꾸며 살아갈 때 우리가 알지 모르는 사이에 영적으로 변화되고 성숙되어 갑니다. 그 속도는 우리 각자가 쏟는 정성과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코린토 신자에게 하신 말씀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갈 때>,(2코5,7) 비록 <연한 것을 하나 꺾어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슴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에17,22.23.)고 희망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고 하지요. 우리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거나, 심지 않았는데 수확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를 정성껏 가꾸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의 신앙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신앙생활, 땀 흘려 가꾸며 성장시키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쉽게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이제 이 겨자씨는 바로 우리 자신을 지칭指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겨자씨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는 작은 겨자씨로 존재해야 합니다. 작은 겨자씨이지만 썩어서 바로 그곳에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와서 깃들일 수 있도록 크게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우리 주위에 모여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말씀은 그러기에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크고 웅장한 나무와 같다.>고 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레 겁부터 먹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작은 것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것이 희망입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에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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