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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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중국 선교를 준비해 온 저희 예수고난회 한국순교자 관구는 우여곡절 끝에 2000년 5월 2명의 형제를 중국에 파견하였습니다. 두 형제를 파견하기 전, 골롬반 선교회 오기백 신부님을 모시고 <파견될 선교사의 자세와 선교공동체의 역할과 지원>에 대한 경험을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강조하신 것 중에 아직도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표현은, <빈 가방으로 떠나라.>는 당부이셨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셨을 때의 권고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집니다. 

 

금년은 코로나로 해외 선교사 파견이 없었나 봅니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 선교사 교육을 거쳐 파견된 선교 사제는 111명, 수도자는 565명, 평신도는 89명 등 모두 765명이 됐다고 합니다. 저는 2011년 1월, 서울 성 골롬반 선교 센타에서 4주간의 해외 선교사 파견 교육을 수료하고 베트남에 파견되어 2014년 4월에 귀국했습니다. 비록 3년 2개월 남짓한 짧은 벳남 선교였지만 전적으로 오 신부님의 권고가 적절한 권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선교사보다 먼저 그 선교지에 현존하시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파견되는 선교사와 늘 함께 계실 것이기에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떠나면 됩니다. 다만 필요한 마음의 자세는 <빈 가방으로 떠나라. 그러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며 도와주신다.>는 주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물론 선교사가 파견되는 선교지에 따라 선교사가 할 수 있는 행동반경이 결정되는데, 아무래도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이기에 종교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서 공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 파견지가 어디든 선교사를 파견했고 파견한 공동체 회원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선교사입니다. 해외이든 국내이든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파견된 선교사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파견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Mr6,7참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며, 공동체도 역시 세상에 파견된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열두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파견하십니다. 파견된 예수님은 본인의 뜻보다 자신을 파견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Jn4,34)고 말씀하셨으며,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Jn5,17.30)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파견된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에 파견되어야 하는지를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파견된 자는 본인의 뜻이나 계획이 아니라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파견될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파견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료하게 제시하셨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Mr6,8)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자가 선교지로 파견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 선포자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즉 선교는 아무것도 즉 세상적인 것을 지니지 않고 떠나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이나 수단에 의지하여 선교지에 파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것은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파견된 삶의 방식이며, 또한 복음 선포자들에게 필요한 선교사의 삶의 방식이며 태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권고를 전제하고 난 뒤, 부수적으로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6,8.9) 빈가방으로, 무소유로! 물질이 아닌 빈 마음으로 떠나는 게 참된 선교사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그런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2코8,9)라고 언급하셨으며, 복음 선포자가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오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에 그리고 성령의 힘에 자신을 내어 맡기면서 시작하라는 의미이겠죠. 더 나아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도록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자가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영적으로 더 많은 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며 어려운 일입니다. 빈 마음, 무소유로 떠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마치 사막을 아무것(물도 신발도)도 지니지 않은 채 횡단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통과하려면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고 하신 까닭은 선교사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도움에 목매지 말고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믿고 재물을 믿으면 실망이 돌아옵니다. 헛소리가 들리며 잡음이 생깁니다. 주님께 매달려야 안정과 평화가 함께 합니다. 다만 솔로몬 임금과 같은 마음으로 선교사도 선교에 필요한 것을 매일 주님께 간청하여야 합니다. 즉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명예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알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비록 짧지만, 베트남에서 선교사로 살아 본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선교사가 너무 물질적으로 궁핍하면 많은 분심과 걱정으로, 허나 너무 부유하다 보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모든 일을 다 자신이 한 것인 양 교만과 자만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루카 복음과는 달리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6,8) 하십니다. 지팡이는 지친 여행자에겐 몸의 의지가 되는 것이며, 길을 걸을 때 위험(=동물이나 뱀)을 물리쳐 주는 것이기에 이를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다리가 불편하기에 스틱을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큰 차이가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아무튼 파견된 사람은 세상적인 것에 목매지 말고 하느님께만 의지하라 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파견된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주신 그 능력과 권한만 있으면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더러운 영들>(6,7)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Lk9,1) 그 엄청난 일은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는 사실 어림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지팡이는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처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거나 되지 않느냐는 것은 그 지팡이를 활용하는 선교사의 자질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튼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일은 주님의 능력만이 그 유일한 답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데, 받아들이지 않고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6,10.11)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해외 피정을 지도하러 갈 때,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면 잡소리나 헛소리가 들려올뿐더러, 그에 따라 저의 몸도 마음도 지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자신을 환영하고 배척하느냐, 환대하고 적대하느냐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여건이 좋든 나쁘든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에 따라 어떤 결과가 빚어지느냐는 환대한 사람이나 적대한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는 어떤 경우든 연연하지 말고 자유로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잠재적인 선교사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생활하고 활동하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의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힘과 권한만으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하는 선교사가 되도록 합시다. 오직 하느님 말씀의 지팡이에 의지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인습적이고 관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으로 갖춘 옷 한 벌만을 입고서 길을 떠나도록 합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마련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데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만을 믿고 신뢰하면서 길을 떠나도록 합시다. 에디트 슈타인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무슨 원하실 때는 반드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고 하였음을 명심하고 빈 가방을 가지고 선교지로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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