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93년 로마에서의 학업을 일찍 마친 나는 3달이 남은 계속교육기간을 일본에서 지내기로 했었다. 일본 고난회의 협조로 토오쿄오, 오사카, 후쿠오카의 고난회 공동체에서 한 달씩 묵으며 수녀원 미사를 담당하는 등 그들의 사목 일을 거들어주면서 자연스레 일본문화와 접하고 언어연수도 했다. 그리고는 이듬해 광주 수도원 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요즈음 연일 이어지는 찜통더위는 자연스레 무척 더웠던 당시의 광주에서의 생활을 떠오르게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지난일은 무슨 마법이나 걸린 듯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로 보이지는 않지만 광주에서의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맡은 공식적인 직책만 해도 수도원 원장, 명상의 집 책임자, 제1 참사위원, 유기서 원장, 광주 가톨릭대학 영성신학 강사, 교리신학원 강사등 참 여러 역할이 있었으나 나는 내가 바쁘다거나 일에 쫒긴 다거나 하는 생각조차 없었다. 돌아보면 상당히 생산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광주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고국이지만 매우 낯 선곳 에서 다시 유학생활을 한 느낌이다. 광주에서는 수련때 14개월과 대학원 2년 살았던 것이 전부다. 수련자로서, 신학생으로서 매우 제한된 사람들만 만났지 남도분들을 직접 만난적은 드물었다. 허긴 서울에서의 인간관계도 동일했으니……. 이곳 사람들만의 특별한 정서와 거기에 기반을 둔 생활양식에 견주어보면 서울사람들은 깍쟁이일 수밖에 없을 테니, 상호 거북함이 많았다. 여하튼 8월 광주의 그 더위 속에서 손 어진 신부님이 우리 수련자에게 추천하신 “시편의 기도유형”을 번역하였다. 지금 같으면 녹아도 물이 떨어지지 않는 냉매가 흔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보기 힘든 것이어서, 수건을 물에 담궈 살짝 짜서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번갈아 머리위에 올려놓아 식히며 타이프를 쳤다. 그 책을 한 달 만에 급히 번역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광주 가톨릭 대학 총장님이시던 김민수 신부님이 급하게 찾으셔서 뵙더니, 신학대학의 커리큘럼에 어딘가 미스가 나서 이제 한 학기만 남은 부제반 학생들이 영성신학을 한 학기도 듣지 못하고 졸업하게 되었다면서, 6개월 후면 서품을 받고 일선 본당에서 교우들을 대할 그들에게 뭔가 밑받침이 될 수 있는 영성신학의 기초를 놓아줄 수 있는 것을 마지막 학기인 2학기에 가르쳐 달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교구신부님들도 매일 성무일도를 하시니, 성무일도에 나오는 성서의 시에 받들리게 한다면 최소한 하루 2번은(아침, 저녁기도) 영원과의 접속을 시도 할테고 간간이 그 맛도 보게될테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겠다 싶어 그 책을 교재로 쓰려고 급히 번역했다. 성서를 인간에 비유한다면 시편은 심장에 해당된다고 한다. 인간의 심장이 산소와 영양분을 등뿍 함유한 피를 인체의 곳곳으로 보내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수거해 오듯이, 성서의 시편도 사람이 사는 과정 중에 발생하는 희로애락을 신앙으로 벋어둘여 이해하고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이해 불가능한 일들은 심장으로 가져와 묵상하고 숙고하며 그 뜻을 천착하였다. 이렇게 몸의 한 지체에서 일어났던 일이 전체의 몸이 참여하는 장이 되고 국가적인 노래가 되어 시편에 수록된 것이다. 성서의 시편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에 친숙하게 되는 것이다.

 

곧바로 번역에 착수하여 3주 남짓 만에 마무리 짓고 한주일간 교정과 윤문을 하고 책을 만들었다. 지금 갔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우선 집중력이 떨어져 하루 8시간씩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뿐더러 의욕도 없고, 지식을 탐구하는 열정도 그런 에너지 자체도 없다. 한 시간만 컴앞에 앉아있으면 몸이 오그라들고 마비가 오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목요일 미사 독서에서 모세는 떨기나무 한 가운데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느님께 이름을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만이 아니다. 현재 교회가 사용하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대답은 “나는 있는 나다.” 선종완 신부님은 “나는 [내가 있노라] 하는 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나는 [모든 것을 있게 하고 일어나게 하는] 자다” 라는 답도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토인비의 프레임인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본다면, 가나안 지역에 원래부터 있던 풍산신인 바알과 전혀 새로운 하느님인 야훼를 체험한 반유목민들의 신앙 사이의 밀당, 즉 토착화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바알신의 영향이 너무 클 때는 소위 예언자가 일어나 이렇게 하면 재앙이 닥치리라는 위협으로 과도한 syncretism(종교 혼합주의) 과 우상숭배의 길에서 돌아서게 했다.

 

탈출기는 이 긴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름 역사를 되짚어 이야기 한다.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로고 고기를 구워먹는 예식은 그들이 야훼 하느님을 “있게 하는지 혹은 일어나게 하는 자”로 체험하는 첫 번째 사건이다.

 

물론 탈출기의 하느님은 정적으로 그저 있는 자라기 보다. 적극적으로 개인과 국가의 역사에 간여하여 무언가를 “일어나게 하는 자” 에 가깝다.

 

  1.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Date2021.07.24 By후박나무 Views45
    Read More
  2. 늙어가는 길을 위한 팁

    Date2021.07.21 By후박나무 Views71
    Read More
  3. "있는 자" or 있게 하는자", 혹은 "있는자" either "있게 하는자"

    Date2021.07.17 By후박나무 Views61
    Read More
  4. 프레임 전쟁

    Date2021.07.12 By후박나무 Views72
    Read More
  5. Beethoven’s Silence

    Date2021.07.10 By후박나무 Views78
    Read More
  6. 희망의 어머니

    Date2021.07.09 By후박나무 Views62
    Read More
  7. '악의 평범성'

    Date2021.07.06 By후박나무 Views99
    Read More
  8. 자기면역질환

    Date2021.07.04 By후박나무 Views93
    Read More
  9. 세자 요한 축일에!

    Date2021.06.29 By후박나무 Views95
    Read More
  10. "메나헴 프레슬러"

    Date2021.06.22 By후박나무 Views132
    Read More
  11. 성체와 성혈축일

    Date2021.06.21 By후박나무 Views88
    Read More
  12. 토비아와 ,라파엘 그리고 강아지!

    Date2021.06.02 By후박나무 Views291
    Read More
  13. 往十里

    Date2021.05.27 By후박나무 Views149
    Read More
  14. Doer와 Seer!

    Date2021.05.24 By후박나무 Views136
    Read More
  15. 구리뱀

    Date2021.05.13 By후박나무 Views158
    Read More
  16. 스칸달론

    Date2021.05.13 By후박나무 Views125
    Read More
  17. 쉘부르의 우산’

    Date2021.05.13 By후박나무 Views101
    Read More
  18. 침묵의 봄

    Date2021.05.08 By후박나무 Views136
    Read More
  19. Date2021.05.03 By후박나무 Views122
    Read More
  20. 삿갓 바위

    Date2021.04.30 By후박나무 Views11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