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화창했던 5월의 어느날 오후 예수고난회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 면담실에서 박도세 신부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하느님을 사랑한다든가 이웃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나는 하느님을 알고 싶을 뿐이다. 이런 사람도 수도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벌써 40년 전의 일이 되었다. 박도세 신부님이 영면하신지도 오늘로 13년째다. 아마 박도세 신부님을 아시는 분들은 지긋이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분이 어떤 답을 하셨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고....” 40년이란 세월이 지나 이제 박 신부님의 말씀을 새겨보니 새옹지마(塞翁之馬)나 굴원의 창랑지수(滄浪之水)와 맥을 같이 하는 말씀임을 알아듣게 된다. 내가 새신부 시절 군자는 능소능대(能小能大)해야 한다고 일러주시던 로사씨의 말씀도 같은 뜻이었다.
일상의 나날을 기록한 이 일기집의 제호를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로 했다. 본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이란 말은 당나라 운문 선사의 말씀이다. 운문 선사가 물었다. “보름 이전은 묻지 않겠다. 보름 이후의 것을 한마디로 말해 보아라.” 그러나 제자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스스로 “일일시호일”이라고 답했다.
吳經熊(1899∼1986) 박사는 자신이 저술한 《선학의 황금시대》라는 책에서 운문선사의 글귀를 이렇게 해석한다. 만월은 보통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라 하니, 깨달음 이후의 삶은(보름 이후) 집착이나 애증이 없으므로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는 뜻이 된다.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으나 나는 오박사의 견해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루하루가 다 좋은날” 이란 제호는 매일이 그렇게 되도록 살아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다 좋은 날이 되도록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는 포신이정(抱神以靜) 을 택했다. 장자의 한 구절인 포신이정은 “정신을 간직하고 고요히 하라”는 뜻이다. 점점 더 제 정신을 갖고 살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쉽게 휩쓸려버리지 않으려면 든든한 지반이 있어야 한다. 포신이정의 수련은 우리가 믿고 딛고 설 그루터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선동성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에 어떤 시인은 이런 싯귀로 통렬히 반박했다. “뼈를 깍는 노력이야말로 아름다운 청춘이어라. 내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이리도 시리고 아픈가”
이렇듯 깨어있지 못하면 은연중에 스며들어 희망을 잃고 좌절케 하는 거짓뉴스나,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을 떨며 무차별적으로 퍼부어대는 온갖 불행한 사고와 잔인한 범죄, 끝도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불길한 미래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오늘날의 순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통렬히 갈파한대로 “네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 하나의 믿음을 굳게 간직하여 진중히 지낸다는 뜻의 포신이정은 하루하루를 좋은 날이 되게 할 것이다.
2021. 10. 19 십자가의 성.바오로 사제 대축일,
박도세 신부님 서거 13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