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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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80년대 말 유학을 앞두고 년례피정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종신서원을 한 후 처음으로 우리 수도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했던 피정이었지 싶다. 그전까지는 우리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동기인 마티아와 늘 함께 해야 했었다. 나는 이리 글라라 봉쇄수녀원을 택했다. 지금은 이리라는 지명이 익산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일몰의 장관을 좋아하지만 그 당시는 새삼스레 일몰의 장엄(莊嚴)함과 고적(孤寂)함에 마음을 많이 빼았겼던 시절이었기에, 이리의 서쪽 너른들로 지는 해를 빠지지 않고 마중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었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해의 학암포를 일부러 찾기도 했고! 저녁노을은 아침노을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로 만물을 품에 안아 고요히 잠재운다.

 

"난 해 지는 게 정말 좋아. 언젠가는 해 지는 걸 마흔 네 번이나 봤어. 그거 알아? 아주 슬퍼지면 해 지는 것이 보고 싶거든." 어린왕자가 이 말을 할 땐 마음이 아팠다. 해가 지는 걸 마흔 네 번 본 날, 그는 그만큼 슬펐다는 이야기니까!

 

피정을 마치면서 원장수녀님과 잠깐 면담을 하게 되었다. 교회의 구성원중 대다수가 여성인데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거의가 다 여성들인 환경에서 남녀간의 있을법한 관계를 모두 끊고 사니 나 혼자만 개밥의 도토리마냥 “외로움을 느낀다. 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원장수녀님은 먼저 곧 유학을 떠난다는 젊은 신부를 북돋아주실 의향으로 “강론하는 것을 들어보니 또 유학을 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하시며 슬쩍 띄어주셨다. 그리고는 이어 독일어로 Einsamkeit 와 Zweisamkeit 에 대해 짧게 말씀하셨다. “홀로있음, 고독” 이 전자의 뜻이고 후자는 “둘만의 친교” 정도의 뜻이다. 물론 교회의 수도생활이나 독신생활은 고독이 목표가 아니라 후자가 목표이다. 그러나 과연 Zweisamkeit를 체득하고 Immanuel(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리라!

이런 존재에 대해서는 가끔씩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생전의 존 메리 수녀님은 당신이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자기르 부르는 소리에 또렷하게 대답을 하셨다는 체험을 들려주시기도 하였다. 내가 전신마취로 누어있는데, 누군가 또다른 내가 대답을 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워 하셨다.

 

나는 올해가 시작하고 몇 달후부터인것 같은데, 잠을 자다 깨어보면 늘 누가 나와 함께 있는것이었다. 때론 아저씨, 청년, 어린아이등 겉모습은 바뀌어 나타난다. 나는 그를 모르지만 안다. 그는 나와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나 일 것 같다. 그는 나에겐 무관심한 듯 그냥 그렇게 내 옆에 있다. 비난이라든가 비판이라든가 호들갑스런 관심이라든가와는 거리가 멀게 그는 그냥 그렇게 나의 곁에 있다. 그것은 관심도 무관심도 아닌 현존인 것 같다. 새신부 시절 글라라 원장 수녀님이 말씀하신 Zwisamkeit가 이런것인가? 이제 나는 이 진아(眞我)와 사귀며 진정한 교제를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진정 영과의 친교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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