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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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다림으로 깨어 준비해야 하는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 시기의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침 하는 순간까지 기다림의 나날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세상의 어둠 가운데서도 희망으로 기다리는 존재들입니다. 희망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그 기다림의 목적이 분명하고 명확하기에 가능합니다. 기다림은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다리고, 사랑으로 기다리는 존재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의 기다림도 있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 역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돌아서기를 하염없이 기다리시고 또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기다리는 법입니다. 제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그분은 제가 사랑하는 것 보다 저를 더 사랑했기에 늘 저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기다리십니다.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서의 주제와 예언자들이 외쳤던 외침은 한결같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 18,2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곧 세상의 심판관이신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예고하시면서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루21,28)고 선언하십니다. 바로 이 말씀에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설렘과 기쁨과 기대가 담겨있습니다. 속량이란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나 포로에게 자유를 주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누군가 신분상 구속받는 경우가 생길 때 가족 또는 친척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를 속박에서 해방시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을 때 하느님께 그 의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관점에서 속량은 온갖 형태로 하느님 백성을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는 하느님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속량이라는 말은 구원 또는 해방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바로 그러한 속량이 가까웠다고 선포하십니다. 당신이 다시 오시는 날, 완전하고 최종적인 속량이 실현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약속된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희망과 용기와 힘을 줍니다. 구원에 대한 말씀보다 더 반갑고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이란 바로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인간을 사랑하시어 구원해 주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현세적인 행복과 지상적인 재화에 몰두하고 만족하려는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비생산적인 소리로만 들릴 것입니다. 때로는 신앙인들도 영원한 생명이나 천상 복락 등에 대한 말씀보다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구원 불감증>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당신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속량의 날인 동시에 준엄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냉혹함에 대하여 오늘 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21,26) 하지만 구원을 희망하며 충실하게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은 그날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21,28)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깨닫는 점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남이 해주어야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신앙의 측면에서 후자를 <구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구원을 위한 우리의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라는 표현이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선택 결정권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구원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아닌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세상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갈팡질팡 혹은 우왕좌왕하면서 살아가기에 오늘 제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으니 그렇게 살아가십시오>(4,1)라고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물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은 늘 자기 나름대로 핑계나 논리로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여하튼 이러한 사고방식의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이들을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종교인이 아닌 참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시되는 참 신앙인의 첫 번째 생활방식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21,34참조)입니다. 일상의 근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늘 해야 하는 일과 크고 작은 근심과 걱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근심과 걱정이 깊어지면 때로는 체념으로, 때로는 자포자기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의 걱정이 내세의 영원의 행복을 위협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생활방식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21,36참조)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기도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일이 아니라 종교인의 일일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하기 위한 기도,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한 기도가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상의 근심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아빠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의 아들 앞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께서 제시해주시는 참 신앙인의 생활방식을 삶에서 실천하는 일입니다. 오늘 화답송의 시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25,8-9)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다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왕좌왕할 인생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이제는 한눈팔 것이 아니라, 정해주고 알려 주신 그 길을 따라 충실히 걸으면 됩니다. 또다시 감금 상태에 놓인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욕망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둘째, 사람들은 싫어함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셋째, 사람들은 망상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넷째,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대림 시기는 주님께서 오실 때,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우리의 방탕이 오신 주님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만취가 주님이 오신 것조차 모르게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심 걱정이 오신 주님께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눈길을 주님 오시는 쪽으로 돌리고, 깨어 기도하면서 올바른 길을 걷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며 대림 시기를 시작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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