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조회 수 12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환자에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5,13)고 말씀하신 목소리를 들으면서 예전 제가 처음으로 루르드 성지를 순례하던 때가 기억나더군요. 나환자의 치유 이야기는 우리 세례를 연상시킵니다. 무죄함으로 초대!!! 사실 서품받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저는 세례 때, 첫 서원 때 그리고 서품 때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런 영적 상태에 있을 때, 저는 루르드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저도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렸으며, 제 차례가 되어 기적수에 몸을 담그는 곳에 입장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자 네 분이 저를 들어 조심스럽게 기적수에 담기는 순간 저는 말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더랍니다. 정말이지 몸도 마음도 순수한 상태, 곧 세례의 첫 순간처럼 무죄함으로 초대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의 종으로써 살아갈 것을 다짐했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내일부턴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이미 5세기 초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주님의 세례를 연결해서 기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을 긴밀하게 잇는 찬가를 불렀습니다. <우주 만물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고 동방박사들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며 별이 그분을 소리 높여 부르노니, 보아라, 이분이 임금님의 아들, 하늘이 열리고 요르단 강에 거품 일고 비둘기 나타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노라!> 그런데 왜,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무슨 이유로 세례자 요한이 베푸는 죄인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 시대의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세리나 군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자신들의 그릇된 삶을 뉘우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행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몸소 받으심으로써 죄 없는 분이 죄인들인 우리와 같아지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신 까닭은 바로 우리와 같아지시기 위함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세례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하느님의 무죄 선언을 받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낮춤 임을 드러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갈라 3,13-14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 사건은 숨겨져 있던 당신의 신적 정체가 계시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려오셨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3,22)하고 말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다 함은 예수님에 의해 열어질 새로운 세상은 곧 평화의 왕국임을 암시해 줍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비둘기는 징벌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동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창세8.11) 이렇게 예수님의 세례는 나자렛 사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실 메시아라는 사실을 계시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성서에서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장엄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인간이 태초에 지은 원죄는 교만이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조물주이신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였던 교만이 바로 원죄의 단초, 시발이었습니다. 교만으로 말미암아 닫혀진 하늘 문이 구세주 예수님의 낮추심으로 오늘 요르단 강에서 열린 것입니다. 하늘을 열리게 만든 사건은 진정 ‘낮춤, 겸손’의 결과입니다. 이 낮춤과 겸손이 하늘과 땅의 막혔던 장막을 찢어버리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가장 작은 자로서의 낮추심입니다. 물론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세례자 요한 역시 예수님 앞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자로서의 겸손을 보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루2,16).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3, 30) 

중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루쉰’(1881~1936)은 1918년 그의 첫 작품인 ‘광인일기’에서 현대인들의 비극적인 삶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합니다. <자신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 모두들 매우 의심쩍은 눈초리로 서로 얼굴을 훔쳐본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마음 편히 일하고 길을 걷고 밥 먹고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건 단지 문지방 하나, 작은 고비 하나 넘는 일인데, 그런데도 그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스승과 제자, 원수들과 서로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 한패가 되어 서로 격려하고 견제하면서 죽어도 그 한 발자국을 넘어서지 않겠단다.> 문지방 한 발자국을 넘어서는 것은 자신의 낮춤의 표지입니다. 이 같은 낮춤이 없었기에 인간과 인간 사이, 하늘과 인간 사이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간이 도무지 실행하지 않았기에, 문지방 한 발자국을 넘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시고 먼저 요르단 강에 들어가시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받아야 할 세례를 받으신 것은 부유하신 당신께서 가난한 우리와 같아짐이고, 같아짐을 통해서 죄인을 우리를 당신의 부유함 곧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시려 함입니다.(2코8,9참조) 우리 모두를 당신과 함께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함으로써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모범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는 분명 몸을 씻고 죄를 씻는 종교 예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천상 잔치에 초대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3,22) 

세례란 그렇습니다. 내 삶의 중심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니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모든 일을 마치려 합니다. 이렇게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주님의 길이 되고, 주님의 종이 되며, 주님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과연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 마음에 드는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그러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필요함을 잊지 마십시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행해야 합니다. 주님 마음에 드셨던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또한 주님 마음에 드는 아들과 딸이 되도록 살아갑시다. 아멘.


  1. 사순절 특강3: 용서

    Date2022.03.17 By이보나 Views249
    Read More
  2. 사순 제2주일: 루카 9, 28 - 36

    Date2022.03.13 By이보나 Views104
    Read More
  3. 사순절 특강 2: 마음의 변화로써 회개

    Date2022.03.09 By이보나 Views246
    Read More
  4. 사순 제1주일: 루카 4, 1 - 13

    Date2022.03.05 By이보나 Views106
    Read More
  5. 사순절 특강 1: 파스카 신비

    Date2022.03.02 By이보나 Views185
    Read More
  6. 연중 제8주일: 루카 6, 39 - 45

    Date2022.02.26 By이보나 Views108
    Read More
  7. 연중 제7주일: 루카 6, 27 – 38

    Date2022.02.19 By이보나 Views127
    Read More
  8. 참 행복 강의 5: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할 것이다.

    Date2022.02.17 By이보나 Views173
    Read More
  9. 연중 제6주일: 루카 6, 17. 20 – 26

    Date2022.02.12 By이보나 Views120
    Read More
  10. 참 행복 강의 4: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Date2022.02.10 By이보나 Views337
    Read More
  11. 연중 제5주일: 루카 5, 1 – 11

    Date2022.02.05 By이보나 Views111
    Read More
  12. 참 행복 강의 3: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Date2022.02.03 By이보나 Views275
    Read More
  13. 연중 제4주일: 루카 4, 21 - 30

    Date2022.01.29 By이보나 Views111
    Read More
  14. 참 행복 강의 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그들의 것이다.

    Date2022.01.27 By이보나 Views518
    Read More
  15. 연중 제3주일: 루카 1, 1-4; 4, 14 - 21

    Date2022.01.22 By이보나 Views98
    Read More
  16. 참 행복 강의1: 행복한 삶

    Date2022.01.19 By이보나 Views217
    Read More
  17. 연중 제2주일: 요한 2, 1 - 11

    Date2022.01.15 By이보나 Views138
    Read More
  18. 주님 세례 축일: 루카 3, 15 - 16, 21 - 22

    Date2022.01.08 By이보나 Views129
    Read More
  19.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오 2, 1 - 12

    Date2022.01.01 By이보나 Views135
    Read More
  20.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 16 – 21

    Date2022.01.01 By이보나 Views16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