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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 Passionis(고난의 기억)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긴 이야기 2001년 1월에 시작될 안식년을 앞두고 아버님의 상을 추석에 치룬 나는 2000년 연말 즈음 이 이야기를 썼다. 다음해에 시작될 안식년을 앞두고 강물 속으로 흐르던 강의 한줄기를 갈무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오늘 2022. 4. 14 성. 목요일 아침에 비디오 파일을 하나 받다. 타이틀은 “Remember Me” 후일 성체성사의 제정이라 거창하게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대개 그러하듯 시작은 보다 더 소박한 대신 진정성이 배어 있다. 고난수도회의 모토인 Memoria Passionis 는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그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태동된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단순무식하게 말하면 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하기 위해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고난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고난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흔들림 없이 믿어라!

 

Take and eat. Take and Drink. Do this always to remember me!

 

어찌되었든 삶의 무게를 감당해내고 지탱하느라 비틀거리다 넘어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자기 것을 모두 들고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경천동지할 큰일이다. 루카복음의 처형장면에는 다른 복음과는 달리 임종을 맞는 세 사람의 대화가 나온다. 그 중 예수와 오른쪽 강도사이의 대화는 무릇 감동적이다. “주님,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정녕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리라”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말이니 진실성은 보장받는 것 같다. 어떤 심리학파에서는 첫 기억을 아주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지금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지반이 어떤 성격의 기억으로 이뤄져 있는가를 아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다. 

 

무비 카메라로 물체를 촬영할 때,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안 보였던 배경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도 그의 삶이라는 전체 그림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어느 정도의 영역에 걸쳐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진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기억은 계속되는 삶의 체험을 통해 변모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가며 더 많은 체험을 하게 되고 자신과 세상을 이해해가면서 지난날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양날의 칼이 된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이 있다.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살아가는 죄수들의 일상을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그려낸 소설이다. 그러니까 솔제니친의 이 소설은 기나긴 강제노동수용소의 생활과 희망이 없는 내일을 멍에로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고발하며 또 이런 생활이 가져오는 인간성의 파괴를 고발한다. 대개의 창조설화는 실낙원으로 이어지고, 대부분의 목소리 큰 사람이나 작가들은 자신이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들, 뭔가 할 말이 있는 작가들의 주제는 낙원의 회복에 대한 것이 많다.  즉 구원론이다.  이런 작가들아 내놓는관점을 통해서도 우리의 주제는 풍요로워진다. 여기서는 일본영화 한편과 프랑스 영화, 그리고 나 자신의 꿈을 한편을 소개한다.   나는 현대문학과 영화를 통해 기억한다는 의미를 풍요롭게 하고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잔잔한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거의 끝 장면에는 제일 큰언니 사치의 독백같은 대사가 나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는 한결같이 아버지가 사라진 후(그러니까 나름 낙원에서 실낙원으로 생활환경이나 심리적 환경이 돌변한 후), 그래도 실낙원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2016년을 시작하는 첫 영화로 선택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그렇다. 그렇게 아버지 없이 성장한 아이들은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모두가 (아버지, 엄마, 새 엄마, 할머니등 그들의 삶에 얽힌이들 모두)그 나름의 이유’ 가 있으리라는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라고. 이렇게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미운사람이 필요치 않게되며 이 시선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의 현실 인간관계는 알게 모르게 만수산 드렁 칡같이 얽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마치 인드라 망의 코에 달린 작은 보석에 인드라 망 전체가 담겨있듯이.

 

미워할 사람이 있어야 할 필연성이 없는 예수는 그런 자기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을 양식(糧食)으로 삼으라 한다.

 

Fuscaldo

 

1991년 6월, 대학원 2학기를 마치고 아일랜드로 본격 여름방학을 지내기 위해 떠나기 전, 로마에서 남쪽으로 400 키로 떨어진 Fuscaldo에 있는 고난회 수도원으로 연례피정을 갔다.

 

수도원 앞은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날마다 저녁이면 지중해로 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었다. 주방책임자셨던 브루노 수사님은 유고슬라비아 이민자 후손으로 이탈리아어는 못하셨지만 마음이 통해서 친하게 지냈다.

 

기도하고 산책하고 책 읽는 단조로운 피정을 하던 중 3일째 저녁이던가, 낙조가 지는 지중해를 내려다보면서 하느님께 청을 드렸었다. 지금 기억에 특별한 청은 아니었고, 하나의 Sign 깊이 숙고할만한 사인을 달라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날 밤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햇볕이 따스한 화창한 날 나는 홀로 호화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항해하고 있었다. 갑판위에는 풀장이 있었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류층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깊은 바닷속에서 용수철처럼 뛰쳐나와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물고기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위에 그냥 떠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한쪽 갑판으로 몰려들어 구경하고, 배는 물고기가 떠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갑자기 호화유람선과 웃고 떠들던 그 많은 사람들은 화창했던 해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구름이 낮게 드리운 음산한 하늘아래 아주 낡고 허름한 통통배에 나와 나의 친구라는 그림자와 같은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커다란 물고기가 떠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니, 물고기는 집채정도 크기의 빙산으로 변해있었고, 그 얼음위에 벌거벗은 남자가 가슴에서는 피를 흘리며 발을 바닷물에 담근 채 앉아있었다. 그는 우리배가 다가가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미동도 없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통통배에 타고 있던 나는 나의 친구라는 이에게 저 사람을 구조해야겠다고 했으나, 마치 그림자와 같이 실루엣만 보이던 친구라는 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이 자리를 뜨자고 권했다. 결국 그 친구라는 이의 의견을 따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쯤 되었던가.…….너무도 생생했지만 다시 잠들면 무의식으로 다시 잠길 것 같아 기록을 하고 자다. 다시 잠들었다가 꾼 꿈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크게 부각되는 기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십자가

의 이미지를 남겼다.

 

처음에는 꿈에 물고기가 나오므로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라는 그리스 단어의 첫 글자의 조합으로 물고기를 생각했으나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고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되면서 점점 일생을 조망하는 큰 그림임을 깨닫게 되다. 새삼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임을 확인한다. 특히 의식이 상정하고 되고자 하는 자아의 모습과 무의식이 보는 자아의 모습이 크게 어긋날 때 이를 보정하려는 자비로운 메시지다.

 

바다 속은 무의식, 바다 위는 의식, 무의식 속 깊이 억눌려 있던 내적자아가 온 힘을 다하여 뛰어올라 의식세계의 외적자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머물며 물고기는 마치 계시하듯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화려한 유람선을 타고 유쾌하게 잘 적응하여 지내는 듯하지만, 내면의 실상은 외부 세계와는 자의 반, 타의 반 완전히 절연되어 가슴에서는 피를 흘리고, 감각은 마비되어 추운지도 모르고 차가운 얼음에 발가벗고 앉아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아이.

 

이 내면의 아이가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외부세계와 절연하고, 일부러 마비시켰던 감각을 되찾아 고통을 느낄수 있게 되고, 외로운 것 밖에 모르던 그가 그리움을 알게 될 때 결국 나를 구원하리라는 의미에서 물고기라는 상징-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가 맞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병은 대개 자각증상이 없어 조기발견이 어렵다고 한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성. 목요일의 메시지는 될 수 있으면 고난을 망각하려는 우리의 입장을 난처하게 한다. 나에게 Memoria Passionis는 가슴에 피를 흘리며 발가벗고 얼음덩어리위에 앉아있던 아이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권고다. 영성생활에서 그 자리는 내 자리며 꽃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기도한다.

 

“깊은 구렁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그 누가 감당하오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내 원수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향기름 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외다”

 

Gran blue(그랑 블루)

 

Big Blue 혹은 그랑 블루라는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자끄 마욜, 주인공은 홀 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자라다

7-8세 남짓 될 때 아버지마저 잃는다. 그리고는 더욱

외롭게 홀로 삶을 이어간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의미는

바다였겠다.

 

물위의 현실세계보다는 더 많은 의미가 바다 속에

있었을 거다. 거기서는 아무도 그를 왕따 시키거나,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재지 않았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친구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고. 적어도 그곳에서 그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왕이었지. 돌고래라는 친구,

적막이라는 안온함은 따뜻함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차가운 상처를

주지는 않으니까.

 

그는 지상의 세계에서는 나비의 꿈을 꾼 장자처럼

살아간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나비인데 지금 장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양. 현실에서는 생존키 위한 최소한의

적응을 하면서 그는 실상 바닷 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인간에의 길이 시작된다. Individuation 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여인의 관심, 그리고 사랑이 그에게

외로움을 가르친다. 그는 외로움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그때껏 외롭게 살았기에, 외로운

생활양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의 세계는 바닷 속의 적막함과 돌고래

물고기와 나누는 나름의 우정이 전부였다. 따뜻한 관심을

받아본 그는 이제 비로소 외로움을 느낀다.

 

종교의 세계, 기도의 세계, 책의 세계는 나에게 바닷속과

같다. 자끄 마욜이 가족사진이라고 내미는 한 장의

사진에는 우습게도 돌고래가 찍혀 있었다. 나또한 그리

다르지 않지 않은가. 내가 가족이라고 내세울 정이 든

사람이 사실 있는가. 그보다는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정을 나눈 솔이가 더 가까운 가족 일게다.

자끄 마욜이 물 밖에서 사는 것을 배웠지만, 사람들과

사는 것을 배웠지만 그에겐 바닷 속이 더 편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에만

특별한 것이 있다고 배타적으로 주장하지만, 동물들과

나누는 사랑에도 독특한 것은 있다. 사람들끼리의

사랑에만 독특한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도

개 나름의 특별한 애정이 있다. 돌고래도…….모든 존재는

다 신비스러운 것이다. 사람만이 그렇다는 것은

독선이며 인간중심적인 근시안의 과시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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