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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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애완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고양이나 개도 주인의 목소리를 안다고 하더군요.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특히 편할 때 보다 아플 때 잘해 준 주인의 목소리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픔을 함께 해 준 목소리의 임자를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10,27)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목자 또한 자신의 양들의 목소리를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저 마다 다른 음성의 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문指紋과 같이 성문聲紋이 있으며, 이는 세상에 완전히 같은 음성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같은 노래를 어떤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노래하느냐에 따라 다른 감동을 청자에게 주듯이, 어떤 목소리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 강론이나 강연을 할 때도 다른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고통 받은 이들에게나 슬피 우는 이들에게 말씀하실 때, 주님의 목소리는 분명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와 희망을 주는 목소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단지 소리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 온 삶의 무게가 스며들어 있는 품성과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막달레나가 그분을 눈으로 뵙고서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리아야!’라고 부르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주님이심을 알아보았듯이 우리 또한 자신의 문제로 자기 안에 갇혀 있지만 않다면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예전 제 엄마는 저의 전화를 늘 기다렸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지만, 효는 귀로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엄마는 단지 제 목소리를 알아들으신 게 아니라 제 목소리를 들으시고 제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저의 내적인 갈등과 힘듦 등 세밀한 것까지 알아 헤아리셨지요. 제가 엄마에 대한 사랑 보다 엄마가 저에 대한 사랑의 앎이 훨씬 깊고 강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실은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고 오늘 아침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양들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들인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때, 지금 내 양이 무엇을 필요하며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다 아심은 당신의 양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양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며, 관심이고 배려의 마음이십니다. 착한목자가 양들을 잘 알듯이 양들도 그 목자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을 때 목자와 양은 깊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의 삶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의 소리만 들어도 알고, 멀리서 양의 모습만 보아도 자기 양을 구별합니다. 목자는 양의 체질이나 습관이 어떤지 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체험적인 앎이며 곧 사랑의 앎입니다.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양도 체험적으로 목자와 목자의 사랑을 압니다. 그 사랑을 알기에, 양은 목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자기 목자의 음성을 기억하고 구별한다고 합니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사랑의 체험으로 알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지적으로만 알기보다는 인격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역시 양처럼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를 따라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이런 자신에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양들인 우리는 우리의 약점으로 인해 종종 넘어질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어 평화와 안식을 주시는 분, 삶의 모든 복을 가져다주며 우리를 돌보는 목자이심을 우리는 알고 따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떼를 돌보는 일을 아버지 하느님한테서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양들을 위해서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끝까지 양들을 돌보는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 곧 성소주일입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한 길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저마다 자신에 적합한 길을 택해 오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각각의 인격체로써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아시고 그 길을 가도록 초대하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성소라고 합니다. 성소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랑의 길은 부부의 사랑도 있고, 교회와 교우를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의 사랑도 있습니다. 즉,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생활하는 것이 바로 성소 주일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사제와 수도 성소를 위한 주일입니다. 사제와 수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아울러 저를 포함하여 이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그 부르심과 직분에 충실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사제로 살아갈 수 있으며, 여러분의 기도가 있기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에 감사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10,14)


2021년 어버이날은 토요일이고 금년은 주일과 겹쳤습니다. 성소주일이기도 하지만 어버이날이 저에게 더 무겁게 닥아 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성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제 부모가 저를 낳아주시고, 저를 주님께 기꺼이 봉헌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 들어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제 무엇으로 돌아가신 부모님께 사랑을, 또 어떻게 부모님께 못 다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와 미사 안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늘 표현하였듯이 ‘사랑은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이기에 매일 부모님의 이름을 불러드리면서 기도합니다. 브라이언 패튼은 ‘시간의 길이’에서 “우리가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는 만큼 그 사람은 살아간다.”고 표현했더군요. 저 또한 나이가 드니 부모님이 하셨던 말들과 베푸셨던 사랑의 표현들이 자주 생각납니다. 그러기에 돌아가신 제 부모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이름을 기도와 미사 때마다 불러드리는 그 시간만큼 제 부모님의 ‘죽음의 수명’은 연장되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수도자이며 사제인 제가 뒤늦게나마 저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법입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받고 계시는 제 부모님은 천국에서 참 행복하실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요즘 ‘오강남’이 풀이한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노자’는 ‘道’의 상징인 ‘어머니’를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들도 한번 쯤 생각해 보셨으면 싶어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잠시 인용하려고 합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깨어 있을 때나 잠들 때나 놀 때나 아플 때나 언제나 그림자처럼, 이슬처럼 사랑으로 덮어 주고 적셔 주는 어머니, 자식이 아무리 성가시게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며 평생 자식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은 채 좌지우지하려 하지도 않는다. 참된 어머니는 자식을 소유하려 하거나 잘 길러 그 덕에 자기 위신을 높이거나 가문의 이름을 빛내려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자기를 비우며 자식만 위해 존재하는 어머니,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 또한 자식을 위해서는 한 없이 ‘작아지신 분들’이시지만, 한 편으로 자식에게는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크신 분들’이십니다. 

아주 오래 전 광주에서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가면서, 우연히 제 앞좌석에 앉았던 나이 들어 보이는 남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내용은 두 사람의 아버지가 젊은 날에 조강지처인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 분과 살림을 사셨나봅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드셔 병든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었던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느라 목소리가 조금 높고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그들 옆에 앉아 계시던 나이 지극한 어르신이 그들에게 한 소리를 하셨습니다. “여보게 젊은이들 부모란 자식들에게 무엇을 많이 남겨야 만이 효도를 받는 게 아니라 부모란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효도를 받아 마땅하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들은 그 어르신의 말씀이 아직도 제 귀에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효도란 무엇인가? 부모 떠나보낸 다음 철난다고 하더니만 옛 사람들의 말이 맞습니다. 나이 들면서, 이제야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부모님은 곁에 아니 계십니다. 저는 제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게 사실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제가 그분들의 행복이었고 위로였고 버팀목이었다고 봅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제 종신 서원 때 어머니는 아들인 제가 열심히 살기보다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부모의 행복은 바로 자식들의 행복이라고 저는 믿기에,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살아 계실 때는 부모님의 행복이며, 돌아가신 다음에는 그게 부모님께 드리는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수녀님이 예전에 제게 당신의 아픔을 이렇게 토로하더군요. 수녀원 입회 전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부모님께 ‘꽃 사지’ 한번 제대로 달아드리지 못했는데, 어버이날이라고 어른 수녀들의 가슴에 ‘꽃 사지’를 달아주면서 불편함과 죄책감으로 힘들어 했다고 말입니다. 살아 계신 부모님께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 사지’를 달아 드리면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시고,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기도와 미사를 드리면서 ‘영적 꽃 사지’를 달아 드리도록 합시다. “이제 주님 안에서 평안히 쉬십시오.” 저는 지난 부활 모임 참석 후, 부모님의 산소를 찾았을 때, 앞당겨 꽃을 드렸습니다. 

저는 2020년 11월 ‘심장 절제 시술’을 받으면서 뜻하지 않게 등 쪽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큰 누이 집에서 누이들과 함께 이틀을 보내면서, 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오류’를 큰 누이를 통해서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엄마에 대한 저의 집착으로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긍정적인 면을 미처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께 저의 못 다한 사랑이 아쉬웠고 아버지께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담아 ‘인순이’의 ‘아버지’라는 노랫말을 떠 올리면서 제 사랑을 모아 불러 봅니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 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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