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4
오늘은 바람이 좀 있는 날이었다. 해가 지니 마치 가을기분이 날 정도로 바람이 서늘하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을 생각하다. 별처럼 빛나던 움을 틔우고 찬연히 빛나는 연둣빛으로 시작한 잎사귀들 이라해서 모두가 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몸으로 겪는 것은 아니다. 어느 이파리는 봄도 지나기 전에 벌레에게 전부 뜯어 먹히거나, 여름장마에 햇빛을 못 봐 녹아버리기도 하고 돌풍에 찢어져 불구로 살아가거나 아주 떨어져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가진 풍상을 다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어 낸 잎사귀들을 자세히 보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으리라, 삶을 완결 짓지 못하고 중도 하차된 이파리들도 나름의 완성도는 있을 터…….
디모테오 2서 7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은 단풍마냥 한 사이클을 다 완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리라 믿는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하듯이 온 가슴으로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있지만, 우연과 무의미로 치부되어 버려지는 경험도 너무 많다.
로마서 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젊었을 때 나는 사도 바오로의 디모테오 2서 말씀을 그야말로 성인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거니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어린아이의 음식과 생각을 버리니, 제일 먼저 삶이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것으로 다가온다. 겉으로 보이는 삶의 양상이 어떠하든 그가 영위해온 삶을 합리화 없이 진솔하게 받아들이며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한다면…….또 다른 이의 삶도 그런 시선으로 보아줄 수 있다면, 그들도 모두 자신들의 길을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 이들이라 하고 싶다. 그들은 당신 빛으로 빛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족: 루카복음 말미의 “주님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너는 정녕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른쪽 강도의 말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