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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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명기의,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다.”(30,14)는 말씀의 핵심은 하느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하지만 않는다면, 하느님은 멀리 계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멀리 계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정말 그리고 이미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멀리 느껴지는 것도 거리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 사랑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야기 하나 들려주렵니다. 7살짜리 장애아가 이모 집에 놀러 갔습니다. 이모가 뜨거운 차를 타오려다 그만 컵을 깨뜨렸습니다. 그 바람에 이모는 손을 데어 아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이모부는 깨진 잔을 쓸어 모으고 걸레로 닦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애인 조카가 이모부에게 “이모부, 이제는 이모 손을 만져 주세요. 이모가 손을 데었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무엇이 중요하고 급한지 장애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인이고 어른인 우리는 잘 모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일인지 잘 모릅니다. 이모부는 무엇보다 먼저 달려가 아내의 손을 붙잡고 “여보, 어디 다치지 않았어?”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가족이, 이웃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한지 살피는 것,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비록 큰일은 아니어도 작은 배려의 마음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너무 크고 부담스럽게만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모든 소식이나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고 파급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전달되고 있지만,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모르는 이때 ‘누가 내 이웃인가?’에 대한 물음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들려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시는데, 한 율법 교사가 찾아와서 질문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10,25)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즉시 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들 안에 내재해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답을 도출하게 하잖아요. 한 마디로 우문현답 愚問賢答(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대답)입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10,26)고 그의 생각과 의견을 물으십니다. 다행히도 그는 율법 교사답게 막연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10,27)고 응답하자, 예수님께서는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10,28)고 그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사랑하며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율법 교사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9)고 재차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를 만나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10,36)고 물으십니다. 이웃을 결정하는 기준이 나, 율법 교사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곧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웃은 내가 정한 범주에 속하는 고정된 이웃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과 대상도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이웃입니다. 그러자 그 율법 교사는 자신들과 사마리아는 적대관계이었기에, 언급하기 불편했는지 ‘사마리아인’이라 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10,37)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그 대답이 훨씬 현명하긴 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꼭 사마리아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말입니다. 성경 공부만 하는 학자보다, 율법을 공부하는 학자보다,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율법을 아는 사람이며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선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고 당부하신 것은 신앙생활도 영성 생활도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고 실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주님에게서 멀어졌든지, 아니면 주님에게서 버리셨다고 느끼든지,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난 다음에는 반드시 더 행복해지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셨는데, 법정 스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고 말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공허한 말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삶을 되살려야 합니다. 실행이 따르지 않은 말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 교사가 답변했던 지식이 그저 말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제한적이고 부족합니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30,14)고 언급한 말씀처럼 실천하지 않으면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누가 우리 이웃이냐는 율법 교사의 질문은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사랑의 실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행동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행동이 없이는 결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행복을 주님에게서 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 받는 이웃에게 힘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과 희망의 빛이 돼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난 모른다고 말하지만 마십시오! 사랑은 지금 여기에서 나를 필요한 사람에게 대한 나의 함께함의 공감이고 배려이고 희생이며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자비로운 마음과 말과 실천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데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마십시오. 사랑은 지금 나를 필요한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체험을 주는 것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 

오늘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티벳의 성자로 불렸던 선다 싱(1889-1929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선다 싱이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산길을 걷다가 동행자를 만났습니다. 동행자와 함께 길을 걷다가 살을 에는 추위에 어느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다 싱이 동행자에게 노인이 길에서 얼어 죽을지 모르니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행자는 버럭 화를 내며 ‘우리도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간다는 말이오?’ 하고는 먼저 가 버렸습니다. 선다 싱은 그 노인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노인을 혼자 등에 업고 눈보라 속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힘겨웠지만 노인은 선다 싱의 체온으로 점차 살아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고 마을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는 한 사내가 꽁꽁 언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 살겠다고 먼저 떠난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요6,63.6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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