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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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7,28)

서울 강남성모병원 검사받으러 가는 길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잠시 책방에 들렀습니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를 잠시 시간 내서 읽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공감한 부분을 인용할까, 합니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편집의 시대에는 지식인이나 천재의 개념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정보를 외우고 있으면 천재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생략) 일단 김용옥에게는 동양고전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해석의 근거가 되는 텍스트가 무한하다는 거다. 죽을 때까지 한 이야기 또 할 수 있다. 개신교의 목사, 천주교의 신부, 불교의 스님들이 평생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해석의 근거가 되는 텍스트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가 항상 변한다. 같은 이야기도 콘텍스트가 바뀌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맥락에 따라 다르게 편집된다는 말이다. 해석학의 본질은 ‘에디톨로지’이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할 수 있으며, 편집능력이 곧 권력이다, 고 주장입니다. 동일한 텍스트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토를 달 수 없는 완결적 이론보다 다양한 생각이나 주장들이 다양한 가지들을 쳐나갈 수 있는 조금은 느슨한 스토리 프레임으로 편집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동일한 사료를 바탕으로 기록한 복음서이지만 각 복음서가 다른 배경은 복음사가들이 자신들 만의 프레임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힘이 있다는 뜻으로 저는 알아듣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 사이에 극명한 시각 차이를 드러내고 있으며 루카 복음에는 아예 없습니다. 복음사가들은 어떤 편집 원칙에서 복음을 섰는지 모르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드러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측은지심 그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무언(=표정과 몸짓)과 유언의 표현, 특히 성차별이나 인종이나 종교에 아무런 차별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복음은 이런 본래의 예수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극히 ‘차가운 도시남’처럼 냉정하고 몰인정하게 이방인 여성을 대하는 모습이 여간 낯설고 생소하기만 합니다. 왜 그렇게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에게 냉정하고 쌀쌀맞게 대하시는지 저로서는 예수님의 숨은 의도, 깊은 뜻을 알지 못하기에 더욱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더욱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노골적으로 치켜세우면서, 이방인을 강아지라고 대놓고 모욕하는 듯싶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알려진 마태오 복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 당신 입으로 자신의 파견 소명을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15,24)라고 단정 지어 말씀하심으로 이방인 여인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왜 저토록 더러운 영이 들린 딸로 인해 힘겨워하고 맘고생을 겪고 있는 불쌍한 여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토록 몰인정하게 대하고, 무슨 심정으로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지 당황스럽고 속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아니 예수님이 갑자기 왜 이러시지!, 하는 볼멘소리가 제 목에 꽉 차오릅니다. 

어찌 뱁새가 봉황의 높고 깊은 뜻을 알 수 있을까? 이것이 예수님의 진심이 아니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말처럼 예수님은 그녀의 속마음을 이미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녀가 원하는 딸의 치료와 치유가 아니라,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로12,2)를 좀 더 알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기 위해 그녀에게 믿음의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을 때부터 그녀의 남다른 모습과 그녀의 절박한 심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더더욱 자기 딸에게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간청하는 그녀에 대한 예수님의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7,27)라고 굴욕적인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간청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녀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7,28)라고 다시금 예수님의 대자대비하심에 의탁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숱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감사하기보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언감생심으로 자녀들의 밥상에서 함께 먹으려 하는 게 아니라, 자녀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만으로도 족하고 족합니다, 는 너무도 겸손한 고백을 듣기 원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는 단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역시 매일 하느님의 식탁에서 말씀을 듣고 성체를 영하면서도 하느님의 한없이 크신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마땅히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무감각, 무감동을 반성하게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새로운 감동으로 감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하기 쉬운 주변의 사물, 사람들은 물론 하느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무라 가즈키오’는 「당연한 일」이란 시에서 이렇게 사람들의 무심함을 묘사합니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공기를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 왜 그러지 당연한 일을 가지고.』
그녀는 딸을 위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말과 몸짓에 더 자신을 낮추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기에, 주님께서는 단지 그녀의 딸의 치유보다도 그녀를 더 높은 영적 생명으로 초대하시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식탁으로 초대하셨다고 봅니다. 이방인인 이 여인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믿음의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기 위해 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낮출 줄 아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께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를 당연시하지 않게 하시고 늘 새롭게 감사하게 하여 주시고, 매일 당신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당신 사랑에 더욱 감사하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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