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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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8,14. 17)

우리가 흔히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동상이몽이란 한 자리에서 같이 생활하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오늘 복음에서 드러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이 동상이몽의 상태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했으면서도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너무 다릅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이자, 그 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에게는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마하가섭이라는 제자라도 있었지만, 예수님에게는 그런 제자가 없었으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난감하고 당혹스러웠을까 싶습니다. 부처님은 연꽃을 들고 설법하셨는데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빵이 부족하기에 예수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누룩은,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마태13, 33) 는 비유에 나오는 역동적인 순기능을 하는 누룩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각한 부정적인 의미의 누룩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과월절 예식을 누룩에 빗대어 설명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1코린 5,6-8) 이처럼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묵은 누룩은 급속히 번져 가는 악을 뜻하며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염려하신 것은 ‘악의 파급력과 확장성’ 그리고 ‘종교적 위선’ 등을 조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삶은 그 당시 대표적인 악의 본보기들이며, 그들의 거짓되고 위선적인 나쁜 생각들과 악을 조장하는 말과 행동이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력에 중독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악의 경향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누룩이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듯 그들의 나쁜 성향과 생각들의 파급력과 확장성을 조심하라는 경고라고 느껴집니다. 물론 그들은 드러내놓고 그들의 나쁜 의도를,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위선과 간계를 더욱더 조심하라는 말이며, 이는 또한 우리에게도 말과 행동이 달라서는 안 된다, 는 것을 경고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적인 양식을 갈망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로 양육되기보다는 먹고사는 데 집착하고 재물과 돈을 충분히 가지지 못해 삶이 불만족스럽고 불평으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 삶이기에 늘 세상의 누룩이 아닌 하늘나라의 누룩이 되도록 늘 깨어 조심하라는 주의의 말씀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어리석음은 분명 빵의 기적을 통해서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적인 빵을 말씀하신다고 이해했던 것은, 결국 그들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겉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그들의 속내는 스승의 가르침과 삶과는 전혀 다른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는 뜻입니다. 마음도 굳어 있고,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딴것에 시선과 마음이 쏠려 갈라져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그러기에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 는 당신의 말씀에 빵이 없음을 걱정하는 제자들을 보고 주님께서는 몇 가지 부정적인 언사로 한탄하시며 꾸짖습니다.

어떤 의사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나는 그동안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스승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많은 환자들이 입에 담는 ‘만약’ 이란 두 글자입니다. 나와 만난 환자들은 지난 일을 회고하고, 그때 반드시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면서 보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후회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습관처럼 쓰는 ‘만약’이란 말을 ‘다음에’ 라는 말로 바꾸어 쓰는 것입니다. 다음엔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한다면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정열을 현실과 미래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습관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보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8,17~18) 이는 결코 허투루 듣고 잊어버릴 말씀이 아니라 우리 또한 명심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시고 허하셨기에 주님께서 이토록 추궁하듯이 쏟아내셨겠습니까? 성서에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느냐?’는 표현이 무려 17번이 나온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듯이 동일한 표현을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고, 한번 보는 것보다 마음을 열고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오관)을 통해 듣고 보고 만진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고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흔한 표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거리가 머리에서 심장(=마음)까지라고 하듯이 신앙은 이성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이해하고 깨닫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보여 주신 그 모든 말씀과 행동이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마음과 하느님 나라를 깨닫도록 하신 것임을 명심해야 하리라 봅니다. 마음이 아니고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며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주님 당신이 깨우쳐 주시는 사람은 행복하옵니다.” (화답송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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