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들은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천당에 갈 자격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결혼생활에도 해당될 것이다. 그만큼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부딪히고 깨지고 망가지는 일을 수없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신생활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외롭기야 하겠지만 일치해야할 건더기가 없을 테니. 오스카 와일드판 나르시스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쉽게 자기애에 국한되는지를 보여준다.
나르시스가 죽자 호수가 애도했다. 모두가 호수에게 공감을 표했다. 호수가 나르시스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봤을 테니 상심이 제일 클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호수는 나르시스의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했다. 왜냐하면 호수는 나르시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호수가 슬퍼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르시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인간의 대지) 는 타당하다. 하느님도 혼자서 독신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나르시스와 호수처럼 둘이 마주보며 실은 스스로를 바라보지 않으려면 제 3의 위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삼위일체를 이렇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