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생각하듯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관계는 아버지, 아들, 손자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에서 걸출했던 부족장 세 명을 3대로 역어, 역사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일어났던 사건들을 집약하고 그 의미를 산출해냈다.
루카가 전하는 세자요한과 예수의 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구시대의 막차인 세자요한이 한 사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그의 타이틀이 드러내듯 그는 세례의 창시자다. 그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푼 것은 단지 물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자요한의 행동에서 그 옛날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요르단을 건너던 여호수아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세자요한의 메시지는 무자비한 정복전쟁을 벌였던 여호수아에 못지않게 엄혹하다. 마태오복음서 11: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새 시대의 첫 차인 예수의 기본정책은 햇빛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자비의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