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한낱 추상적인 가치추구나 율법체계의 준수가 아니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이 란 체험이 있어야 한다.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을 만난 모세를 비롯하여 이사야, 예례미야, 엘리야 예언자들은 모두 강렬한 하느님 체험이 있다. 이들이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는 소명사화로 불린다. 하느님을 만난다함은 앞으로 해야 할 미션을 부여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미션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로서 당사자의 지나온 삶과 현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사야 65:16 그리하여 지난날 암담하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내 눈앞에서 스러지리니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복을 빌겠고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은 미쁘신 하느님을 부르며 맹세하리라. 17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대통령중심제의 국가에서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없는 정당을 불임정당이라 하는데 시사 하는바가 많다. 그런 정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으므로 곧 사멸하게 된다. 잠언 29:18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get out of hand. 비전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하느님을 믿는다, 사랑한다 하지만 인격적인 만남에서만 비롯하는 비전이 없다면 미래는 불투명하게 된다. 무자비하게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나고 내가 받은 미션은 무엇이었던가? 덤으로 받은 영원한 생명을 마음껏 누리고 전하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미션에 충실한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일 게다. 내일 성모영보 대축일이다.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미래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얼마나 자주 순간마다 밀려오는 회의와 맞서야했을까? 하느님의 아들이라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닐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