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엠마오

by 후박나무 posted Apr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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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움을 틔워 돌돌 말린 잎을 앙증맞게 내밀던 나무와 새싹들이 두 번이나 내린 봄비에 부쩍 부풀었다. 겨우내 투명하게 보이던 숲이 벌써 새로 돋은 나뭇잎과 새싹으로 불투명해졌다. 앞으로 더 하겠지.

 

골고다의 십자가에 매달린 세 사람의 대화가 루카가 속했던 공동체에 고유하게 전승되던 신심을 보여주듯이 엠마오 이야기도 그런 부류의 사화가 아닐까 싶다. 이스라엘에 갈 때마다 소위 ‘엠마오’ 후보지라는 곳에 가보지만 어디도 조건이 딱 들어맞는 곳이 없는걸 보아도 그렇다.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너무 진실한 이야기다” 엠마오 이야기에 대한 유명한 해설이다. 나에게 엠마오 이야기는 같은 부류끼리의 담합, 폐쇄를 벗어나 위험하지만 이질적인 것에 마음의 문을 열 때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나이 들수록 하느님을 믿음은 사람을 믿는 것이란 뜻으로 새겨지며 그만큼 하느님을 믿는 일이 至難해 진다. 사람을 믿는다 할 때, 그 근본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하느님의 모상이 많이 약화된 현실을 당연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관용과 더불어 지혜가 필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었지만,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맹목적으로 믿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바람은 믿었지만, 그 바람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제자들의 내적인 힘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모두 도주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 실망이나 좌절이 없을 수 없었겠으나 그들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예수님도 개개인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나름 많은 시행착오로 인한 좌절과 실망을 통해 터득하셨으리라. 오래 전 ‘실망한 예수’ 라는 글을 썼다.

 

실망한 예수

 

오늘 새벽묵상후 미사 준비를 하느라 주수병이다, 십자가다, 주섬주섬 챙기다 "실망한 예수상" 과 다시 맞닥뜨렸습니다. 꼭 잊은 것은 아니더라도 기억의 저 구석에 밀쳐져 있던 상인데 오늘 다시 새삼스레 만나게 된 셈입니다.

 

따져보니 벌써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더군요, 이 실망한 예수를 처음 만난 지도. 아마 84년 1월경으로 기억되는데…….

 

수련 기간 중 실시하는 사목실습을 하기 전에 며칠간의 휴가를 받았었는데, 저는 설악산을 다녀왔지요. 눈 덮인 설악 산행을 만족스레 끝내고 수도원으로 귀원하는 마지막 날 옛 친구 집을 방문했었더랬습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인데, 당시 벌써 결혼을 하고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랑 낮부터 술도 한잔 하면서 지난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왠지 저는 갑자기 그 친구랑 제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비교하면 "대충 불행해지는" 게 사실인가 봅니다.

 

그 친구는 나름대로 경제적인 독립도 이루고, 아내도 아들도 거느리고 무언가 한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것 같은데, 제 자신을 보니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직도 수련자 학생이지, 월급이라곤 쥐꼬리만큼 받지 게다가 그것도 어디에 썼는지 적어내야 하지, 등등……. 좀 참담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친구에게 할 수도 없고, 그저 빨리 그 집에서 떠나고만 싶었습니다마는, 제 속마음을 모르는 친구는 마누라와 합세하여 저녁까지 기어이 먹이고야 놓아주었습니다. 잡아준 택시를 타고 와 우이동 그린파크앞에서 내려 그 산길을 걸어 올라오는데 그야말로 온갖 생각과 회한이 난무하더군요.

 

그래도 내 딴에는 영원한 생명을 맛보았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그 영원한 생명을 더 누리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이런 길을 택하고 걸어간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보니 말짱 황 인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뭐가 씌운 것 같기도 하고…….

 

날은 어두워지고 눈발은 날리는데 앞으로 살아갈 일이 참 한심하고 日暮途遠이 이런 것인가 싶다 했지요. 수도원으로 가는 길을 올라가다말고 "아직도 늦지 않았지!" 하며 다시 내려가다가는 올라오고, 달밤에 쇼를 했습니다.

 

여하튼 밤늦게 귀원하고 다음날 잔뜩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사목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내 자신이 여기서 살지 말지 마음이 뒤숭숭한데 뭔 피정지도를 하겠습니까? 그래 자초지종을 당시 지도자이시던 시카고 박씨 박도세 신부에게 말씀을 드렸지요(미국사람이거든요. 바르토젝이라서 한국이름으로 박 도세 이렇게 지었지요).

 

박 신부님은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그냥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신 방에 갔다가 목각 상을 하나 가져오셨는데, 그것이 바로 "실망한 예수" 라는 상이었지요.

 

그것을 처음 보던 순간을 저는 잘 기억합니다. 실망한 예수상을 본 순간 제마음속에서는 "저거 나랑 똑같잖아! 히쭈구리하게 찌그러져 앉아가지고는 '내가 왜 이럴까 전에는 안 그랬는데' 하는 듯 한 게……." 그리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 순간 저는 의기소침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 나의 길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소설같이...

 

예수도 실망할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힘이 되었던가. 봅니다. 허긴 사는 것이 힘들 때, 우리 대다수는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힘을 얻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처럼 힘들게 살거나 더 어려운 중에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군요. 내가 따르고자 하는 그분도 저렇게 실망할 때가 있었다는 게 저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 "실망한 예수상"을 만든 폴란드 사람들도 그들의 역사상 하고많은 좌절과 실망이 있었기에 이런 상을 만들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합니다.

 

그때를 계기로 온전히 하느님이시며, 온전히 사람이라는 도그마에서 전자만 있고 후자는 유명무실했던 신앙이 좀 더 균형 잡힌 신앙으로 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자만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것이 가능했던 계기 말입니다. 오늘 실망한 예수상을 바깥에 내다놓고 몇 장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아래 첨부화일로 폴랜드 사람들이 만든 "실망한 예수상"을 올려 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떻세요? 정말 히쭈그리한게 의기소침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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