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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거듭남

by 후박나무 posted Sep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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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십자가 현양축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고등학교는 시작되지 않은 2월 어느 날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를 만났다. 그날 저녁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고교 2년까지 참 충실히 다녔었다. 고3이 되면서 교회 나가는 것을 중단했는데 대학입시의 압박도 있었지만 그것은 핑계였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성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양성된 내 마음에 목사의 설교는 시대착오적 어리석음을 강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목사님은 성서를 문자 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고루한 사람이었다. 그래 종교문제는 대학에 들어간 후 풀기로 나 자신과 잠정적으로 타협하고 미뤄두었다.

 

그러던 것이 고3 여름 방학 때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손에 든 파스칼의 ‘팡세’를 읽게 되면서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종교와 신앙문제에 다시금 휩쓸리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꾸게 한 것은 대부분 “책” 이었다. 그런 것이 하나하나 緣起가 되어 내 삶을 이끌어간 모양이다. 남 같은 감수성이었다면 팡세의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바람에 휩쓸리는 수풀처럼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어찌나 군중속의 고독을 느꼈는지.

 

나는 대학입시 몇 일전까지도 “거듭남”을 강조하던 극동방송의 권 목사 댁을 찾아가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거듭나는지를 물었다. 그런걸.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된 것이 하나도 이상치 않다. 그 당시의 내가 보기에는 권 목사가 주장하는 것들이 매우 타당했지만 현실에선 교단으로부터 배제되는 등, 말하자면 현실의 괴리를 목도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철이 드는 거라는 소리도 듣고....... 거기에다 죽음까지 깨닫게 되니 당연히 허무에 시달리게 되고 오늘 니고데모처럼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의문을 풀려고 대학입시를 몇일 앞두고 목사 댁을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겠다. 오늘 니고데모는 狂風怒濤와 같던 나의 청년기를 떠오르게 한다. 나도 참 먼 길을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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