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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Extro-ordinary”

by 후박나무 posted Dec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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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는 노 인조 수사님의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금경축하 미사입니다. 우이동 명상의 집에 오르는 콘크리트길 중간쯤에 제법 큰 벚나무가 있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보았던 불타는 가시나무처럼, 올 가을에도 하루아침에 붉게 타오르더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도 안 돼, 2~3일 만에 쏟아지듯 잎을 떨구고 지금은 나목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지요. 수사님과의 기억은 82년 그 벚나무에 버찌가 열릴 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부 청원자로 오전에는 reader’s digest로 영어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노 수사님을 도와 벙커-C유를 때던 보일러를 보다 열효율이 높고 간편한 보일러로 바꾸면서 불필요하게 된 파이프들을 잘라 내던 일등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을 거들었지요.

 

돌아보면 지난 36년이란 세월동안,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수도회 형제들 중 누구보다도 더 오랫동안 같은 수도원에서 지냈습니다. 내부 청원기를 마치고 수련을 받으러 광주로 가게 되었더니, 노수사님이 광주 원장으로 내려오셔서 또 같이 살게 되었고……. 국내에서 같이 사는 게 양이 안차서인지 로마에서도 몇 년간 같이 지냈지요. 시칠리아, 아드리아티코, 스위스, 영국, 프랑스 파리, 이스라엘등……. 제 안식년 기간이 끝나가는 2001년 성탄절 때에는 시카고에서 출발하여 플로리다 키까지 교대로 운전하며 자동차 여행을 하고 며칠씩 책만 읽으며 휴가를 보내기도 했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노 수사님은 나에게 누구였을까를 생각해보면 어느 날 아침 광주수도원 식당에서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아시다시피 손 어진 신부님은 보다 사실적이고 단순해서인지, 아니면 상상력의 부족 때문인지(?) 현실을 촘촘하게 혹은 좀 더 사실적으로 파악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노수사님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어떤 상황을 좀 더 재미있고 극적으로 표현하면 손 신부님은 그것을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여겨, 진짜 그랬느냐? 고 물어 초를 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날도 비슷한 일로 옥신각신 하다가, 제 의견을 물었지요. 저는 그때 노 수사님을 한 마디로 “Extro-ordinary” 로 “보통이 아닌 사람, 혹은 특별한 사람” 으로 정의했지요. 노수사님은 흡족해 하시고, 손 신부님은 좀 못마땅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면에서 노 수사님은 저에게 extro-ordinary 이었을까?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내한 하셨을 때, 세월호 리본을 달고 계신 것을 보고 어떤 싸가지 없는 기자가 ‘떼는 게 낫겠다.’ 고 했었다지요. 교황님의 대답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이었습니다. 교황님이 그런 말씀을 하기 오래전부터 저는 노 수사님을 “무릇 인간적인 것이라면 낯설어 하지 않는 사람” 으로 여겼습니다. 선교사로서 선교지에서 만나게 되는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무시하거나 배타적인 태도 없이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배우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았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던가 봅니다. 호세 오르베고죠 총장의 비서로 가게 된 것도 파스팍의 서기에서 의장으로, 국제양성소의 수련장으로 자신의 활동무대를 넓혀 갈 수 있었던 것 모두 인간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배척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로 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도회 입회 전에 로렌조 수사가 쓴 ‘하느님의 현존’ 이란 소책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수사님의 현존은 무시 못 할 비중으로 하느님을 현존케 합니다. 아무쪼록 국제 양성소의 소임을 빨리 마치시고, 한국 순교자관구에 현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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