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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무아

by 후박나무 posted Feb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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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잠이 안와 아주 일어나 앉아 책을 보다가 밤을 새웠다. 이렇게 한 숨도 못잔 날은 어떻게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될까? 동명의 영화는 이런 방법을 제시한다. 일본의 선을 맛보여주는 듯.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매일이 좋은날이란 그런 뜻이런가”

 

이런 해석은 Wu-Men 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Ten thousand flowers in spring, the moon in autumn,

a cool breeze in summer, snow in winter.

If your mind isn’t clouded by unnecessary things,

this is the best season of your life.

 

그러나 원래 이 화두를 던진 중국의 운문선사가 가리키던 손가락과는 조금 방향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보름달이 뜨기 전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만월이 뜬 후 사정은 어떠한가?”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운문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며 자리를 떠났다.

 

이 화두에 대한 영화의 해석이 일본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얻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경지에(내가 없는) 도달한 후의 삶이나, 깨달음의 상태를 나누기보다 거기로 가는 수단으로 지금 여기에 온전히 현존하는 정진(精進)과 수련(修練)에 강조점이 있다.

 

운문의 선어가 달이 뜬 후를 묻는데 비해 일본선은 어떻게 나를 없애 달이 뜨게 하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어느 해 만추(晩秋)에 만산홍엽(滿山紅葉) 의 치악산을 홀로 올랐었다. 지천으로 깔린 갈색의 가랑잎을 밟으며 산을 오르던 중 갑자기 ‘나’ 가 없어지다. 그랬더니 바로 그 순간 지천으로 깔린 나뭇잎들이, 멧부리들이, 있는 모든 것이 ‘나’ 더라. 찰라와 같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없어졌을 때의 그 지복(至福), 범아일여(梵我一如) 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맛을 볼 수 있었다.

 

일본 다도는 가톨릭의 미사전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차는 형식이 먼저예요.

처음에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거죠.”

 

스무 살의 노리코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다도가 그녀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따스한 찻물이 그녀의 매일매일을 채우기 시작한다. 형식을 배워 따라하지만 그 형식이 일상에 스며들어 마음까지 담기게 되기 전에는 그저 대대로 전해져 내려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관습은 생명력이 없는 화석 같은 전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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