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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야뽁 나루

by 후박나무 posted Ma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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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피로증으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주었지만 증상에 차도가 없자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무슨 주사를 맞고 약이 퍼지기를 기다린 다음 통속에 들어가 10분 넘게 머물며 촬영을 하고 나왔다. 검사결과를 보며 의사는 너무나도 쿨한 태도로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진단을 내리지만 듣는 환자에겐 선고(宣告)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혹은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망상 속에서 살던 사람이 느닷없이 기한부 생명을 선고받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하필이면 왜 내가?”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 망상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의 응답은 “하필이면 왜 내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가?” 정도 되겠다. 강릉 아산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전봉사를 해 주시는 자매님이 검사결과를 물었을 때 별것 아니라 하더라고 얼버무렸다. 아직 관구장에게 전화도 못한 상황이기도 하고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기에!

 

선고를 받고 처음 “하필이면 왜 내가 아니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며 수용하는 응답을 했을지라도, 삶이 이어지는 한 마음 깊은 곳에서 “하필이면 왜 나인가?” 라는 불복도 거듭 머리를 들기에 이 수용도 거듭 거듭 반복되어야 한다. 야뽁강 나루에서 야곱이 하느님이 보낸 알 수 없는 어떤 사람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고 환도 뼈를 크게 다치듯, 우리도 엎치락뒤치락하며 마음에 동이 터 올 때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의사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듯이, 마리아도 느닷없이 아기를 가지리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豫告)를 듣는다.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며 수용한다. 그러나 이런 수용의 밑바닥, 마리아의 마음속 야뽁나루에서는 씨름이 시작되어 아마도 십자가 아래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은커녕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 일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이 안배하신 것이므로, 선하신 하느님의 얼은 그 일을 통해 고르디 고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기 위해 오늘도 그림자와 씨름을 한다.

 


  1. 야뽁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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