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에서 폭염경보를 발할 정도로 뜨거운 날이다. 그런데도 개방의 날이라고 명상의 집이 가득 차게 교우들이 찾아오다. 원래 개방의 날에 오는 분들은 노령이긴 하였지만 근래에 들어 더욱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것 같다. 교회자체가 그러하니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미래일 수밖에 …….
거의 40여 년 전 우리의 모관구인 성. 십자가 관구(시카고) 관구장 이셨던 폴. 보일 신부님은(후에 총장을 2회기 연임하고 자마이카 주교로 서품되어 봉사하시고 은퇴하여 루이빌 수도원에서 선종하셨다) 이런 미래교회를 예상하며 그 원인을 무언가 수도생활이나 신앙생활의 잘못에서 찿던 이들을 ‘어두움의 예언자’ 라던가 하는 말로 비판하곤 하셨다. 아마 말씀의 요지는 모든 것에 때가 있으니 성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도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태여 어떤 탓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신 듯.
정든 고향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다. 오늘 그의 아내 사라는 127세로 생을 마감한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의 무덤으로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가나안땅에 처음 공식적으로 자신의 땅을 갖게 되었음은 한 번 다뤘었다. 아브라함은 175세 까지 살았으나 야훼 하느님이 하신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보지는 못한다. 하느님의 약속이 그의 생전에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나보다.
예수의 족보를 보아도 인간 측의 잘못으로 모든 게 어긋나고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가계도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긴 호흡, 긴 안목이 필요하다. 예수는 전혀 그럴법하지 않은 인물들을 제자로 뽑거나 주변에 두어 어울린다. 하느님의 구원사업도 같은 과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