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탈도 행사도 많았던 달이 갔다. 새 달을 시작하면서 박도세 유스티노 신부님을 기념하다. 워낙 복잡한 달인데다 올해는 대선까지 겹쳤었다. 복잡다단하기에 어제는 몸이 힘들었나보다.
한나의 노래나 즈카리야의 노래 , 마리아의 노래는 모두 한 개인의 생애 중 절정이랄 수 있는 순간에 터져 나온 찬가답다. 비단 한 개인이 아니라 계층이라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모든 바람과 동경이 갑자기 다 이뤄짐에 놀라움과 감사를 드리는.
지난 대선 때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경험했던바, 나라다운 나라, 사람 사는 세상이 갑자기 현실화된 듯 손에 잡힐 듯 생생하던 기억이 새롭다. 마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눈부신 섬광아래 온전히 드러나던 있어야 할 세상을 미리 본 듯한 체험 말이다.
우리의 삶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므로, 다시 어두움과 혼란은 일상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남루한 일상을 살아야 하더라도, 그때의 섬광아래 드러나던 있어야 할 세상을 잊지 않는다면 번쩍이진 않더라도 은은한 빛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은은한 빛을 비추어 주던 신앙의 선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