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요르단 등지에 3달간 머물면서 진행된 성서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제출해야 했던 것은 각 과목당 페이퍼와 하나의 단원마다 3개의 질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우리처럼 주입식 교육과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만 하는 일방통행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갑자기 역주행이라도 하는 양 당황스러운 수업방식이었다.
트럼프란 사람이 예루살렘을 두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소식을 들으며 당시에 내가 했던 물음을 상기해 본다. 그때는 2001년으로 예루살렘 중심가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빈번히 일어나고, 9월 11일에는 마침내 미국본토도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아브라함이 거의 기원전 1800년대 사람이니 그로부터 얼추 잡아 근 3800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공동성지가 되었다. 우리가 여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공존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더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의 DNA 에는 그럴 가능성이 애초부터 없는 것일까?”
오늘 복음은 불경 숫타니파타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는 願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과 실천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도 멀고 먼 길이지만 가슴에서 팔, 다리가 더 멀다는 말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