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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친구 - 자유

by 후박나무 posted May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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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우박까지 쏟아져서인지 새벽공기가 가을날처럼 쌀쌀하다. 보름이 지나 하현으로 줄어든 하얀 달은 서쪽하늘로 기울고, 노랑 길냥이는 이른 아침을 먹으러 왔다. 연둣빛을 지나 짙어지는 녹음이 아니라면 천생 가을 분위기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발단 혹은 강의 시원을 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만 해도 그렇다. 그 샘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 쏟아지는 비에서 비롯된것일테고, 비는 땅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만든 구름에서…….등으로 무한 순환하니 말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야” 란 독백은 그러기에 얽히고설킨 인과를 깊이 통찰한 결과다.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수많은 인과중 영산홍을 그 일의 발단으로 정하는 것은 자의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편의상 그 일의 마무리를 라일락 나무 그늘로 정하는 것도. 아무리 세상 모든 일이 시작도 끝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해도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시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5월의 그 일은 영산홍과 라일락으로 기억된다. 보문사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며칠 후 네 형제가 정원의 라일락 나무 그늘에 같이 앉게 되었다. 압제자가 사라져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11년간 잊고 살았던 행복이었다.

초교 6년까지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자기 한 몸 생존에 급급했기에 옆 사람을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겠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음은 자유를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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