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0.05.13 15:45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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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 10일 작성했으나, 고난회 홈피를 관리하는 회사가 해킹을 당해 올리지 못하다 오늘에서야 홈피가 열려 올린다.

 

오랫동안 못 들어 거의 잊었던 빗소리, 그것도 봄비 듣는 소리를 만끽하다. 차분하게 일박이일동안 얌전히 내리는 작은 빗방울에 켜켜이 붙어있던 먼지며 송화가루 등을 일거에 씻어버린 나뭇잎의 연둣빛이 싱그럽다. 체력의 현저한 저하로 우이령을 오르는 대신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내려갔다 올라온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한 것이지!

 

오늘 같은 날은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카라얀)를 들을 만하다. 베를리너 필은 회원인 나만 가능하니, 여기서는 유튜브로 제공되는 비엔나 필을 소개한다.

https://youtu.be/UnorZdEBkSY 2악장은 11분부터 시작한다. 신세계로부터라고 하나 사실 훌륭한 음악은 우리들의 마음을 고양시켜 천상의 고향으로 데려가는 것 같다.

 

신학생 때부터 작곡과 글 쓰는 일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꼈다. 괜찮은 곡이나 글 모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어쩌다 주어지는 영감으로부터 시작한다. 삶의 지극한 순간, 성 석제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받게 되는 영감 말이다. 아름다운 콘체르토나 교향곡등 우리의 마음을 강렬히 울리는 음악에는 보통 아주 아름다운 테-마 음이 있다. 콘체르토나 교향곡 등은 이 짧은 테-마 음을 반복하고 변주하며 확장한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먼저 영감으로 받은 주제가 없으면 문골(文骨)이 없어 일필휘지(一筆揮之)는커녕 잡문의 나열이 되고 만다.

 

내심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은, 좋은 음악은 여러 번 들어도 그 감동이나 여운이 처음 들었을 때에 못지 않는데 반해, 강론은 그런 경우가 매우 희소하다는 것이다. 악보를 보고 해석하는 연주와 텍스트를 해석하여 강론하는 일은 논리적 일관성으로 볼 때 동일한 일인데 말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전기적 영화 ‘아마데우스’ 에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했던 살리에르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보며 거의 법열의 경지에 드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음표를 넘어 그 음표들이 하나의 손가락이 되어 가리키는 그 세계를 볼 수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성서를 해석하여 강론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도달한 신비의 경지가 원저자의 체험에 견줄 수 있거나 버금갈 때 비로소 그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빛은, 우리들의 삶, 성벽을 이루는 특별할 것도 없고 눈을 끌만한 것도 없는 나머지 우중충한 돌에 빛을 던져줄 것이다.

 

성서를 커다란 패러다임으로 보면 출애굽기로 시작한 자유인에로의 초대가 세대를 거듭하여 반복되며 각 시대를 사는 이들은 고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이뤄나간다. 얼핏 보면 단순무식하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여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양분하는 듯 한 인상을 주는 요한복음도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세상을 나누진 않는다. 이백도 잘 알았다시피 칼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술 마셔 시름을 꺼보자 한들 시름은 더욱 깊어지니 말이다.

 

抽刀斷水水更流 추도단수수갱류

舉杯消愁愁更愁 거배소수수갱수

 

예수가 우리에게 원했던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자 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위해서는 이 세상과 저 세상, 혹은 차안과 피안 사이에서 시황에 따라 지혜롭게 두 차원간의 비중을 달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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