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도 이제 반 남았다. 우이령의 단풍은 퇴색의 기미를 보인다. 이제 곧 북풍이 불어와 남은 잔재를 깨끗이 정리하겠지.
오늘 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이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양양의 남대천 연어 이야기를 생각하다. 모든 연어의 치어(稚魚)들이 남대천을 떠나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회귀(回歸)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남대천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살아 성숙치 못한 연어들도 있다. 그들은 대양을 경험하고 돌아온 연어에 비해 모양이나 크기가 현저히 다르고 작다.
나이가 들었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근본구도가 낙원(樂園)이 아니라 실낙원이라는 성서의 세계관이 점점 더 호소력을 더해간다. 그래 실낙원(失樂園)이다. 그러기에 모든 치어들이 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거슬러 헤엄쳐 돌아오는 비율이 1.5% 밖에 되지 않을 그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 들었다면 핑계라고 여길 많은 것들이 이제 와서는 사연(事緣)으로 들린다. 저마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복음사가 요한은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주문에 나이든 사람부터 돌아갔다고 하지 않는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게 핑계처럼 들리던 것을 사연으로 들을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들 안에 있는 그림자들, 치어로서 성장이 멈춘 모습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핑계가 사연이 되는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느님과 자신에게 또 이웃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