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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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종교문제에 천착(穿鑿)하여 청소년기 전부를 하느님과 씨름하며 고뇌하다 마침내 가톨릭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나를 제외하고는 우리 집안에 종교를 진지하게 대하는 구성원은 별로 없었다. 누님 두 분이 내가 영세한 후 영세를 받았고(모니카와 카타리나) 아버님(요셉)도 오래잖아 영세를 받으시기는 했지만 역사도 일천하고 배경도 없으니 뿌리 깊은 신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영세 받으시고 근 40 여년이 지난 오늘 조카가 프란체스코란 본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2020년 11월 22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말이다. 공교롭게도 1721년 오늘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로 불리게 될 수도회를 시작했다. 바로 오늘이 수도회 창립 300 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조카의 영세 식을 보지 못해 유감이다.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카가 받은 영세명 프란체스코 성인의 유명한 일화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나눔으로 오늘을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자.

 

내가 예수고난회 한국순교자관구의 장상으로 있던 시기는 가톨릭교회가 세계적으로 ‘구조조정’ 이라는 유행을 탈 때였다. 관구장으로서 당연직으로 참석해야 하는 국제회의에 더해 아시아태평양 예수고난회의 지역의장으로 참석해야 할 회의나 행사도 많았고, 로마 꾸리아와 함께 하는 구조조정의 진척상황 보고나 단기적 미래계획을 위한 협의를 위해 로마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예수고난회(PASPAC) 에 속한 나라는 한국,중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인도,호주였다. 당시 가톨릭 교회 내에 유행처럼 번졌던 구조조정은 점차 성무를 집행할 수 있는 성직자, 수도자의 숫자는 줄어들고 급속히 노령화 되어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기존 수도원의 통폐합, 사목일의 조정과 포기를 통해 쇄신의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통렬하게 지적했듯이 “노인들을 합친다고 젊은이 되나?” 그 외에도 이 문제는 주로 서구교회가 당면한 문제이지 아직 상대적으로 젊은 아시아쪽 예수고난회에는 그리 절박치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교회는 아직도 그레꼬 로망에 뿌리를 둔 유럽인들과 북아메리카인 들이 주류기에 그들의 의제를 아시아 고난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관계로 로마에 자주 갔지만 나에게는 그리 빡빡한 일정이 아니었다. 문제 자체가 내 발등의 불은 아니지 않는가! 남는 시간엔 책벌레답게 주로 도서관(biblioteca 비블리오테카) 에 살면서 보물을 찾았다. 그때 이전에 읽었던 성.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책과는 매우 다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 자신도 기왕에 그렇게 많은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책이 있는데 구태여 또 한 권을 덧붙여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있었으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본 성인을 알리고자 출판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씨시는 몇 번이나 갔었지만 그 책을 읽고 새삼 1박 2일로 아씨시를 다시 방문하였다.

 

이탈리아에선 흔히 보이는 풍경인데 평지에선 농사를 짓고 사람들의 주거지는 언덕이나 산에 있다. 거주지로서의 산은 정상에 지배자가 살고(주로 성곽, ROCCIA) 그 아래로 사회적 Strata 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 아씨시는 제일 꼭대기에 군주, 지배자의 집(성, CASTELLO ROCCIA) 이 있고 그 아래에 주교와 시장, 중요한 정치가, 부유한 상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회구성원중 하층민이 거주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그의 아내 피카 데 불레몽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녀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피카는 본래 프로방스 태생의 귀족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 때 피카는 아시시에서 프란체스코를 낳았다. 알다시피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으로서 아마도 프랑스에서 자신의 행운을 찾았는지 아들의 이름을 프랑스인을 뜻하는 프란체스코로 하였다.

 

이 책의 독특한 관점은 프란체스코의 일화에서 가장 유명한 회개장면의 해석에 있다. 프란체스코의 반복되는 기행에(가진 것을 몽땅 거지에게 주어버린다든지) 결국 그의 부친 피에트로는 최후의 수단으로 프란체스코를 도시 집정관들에게 데려가 프란체스코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종교적 문제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교회의 판결에 달려 있었다. 도시 집정관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상속권은 물론 부친과의 관계마저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심지어는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부친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부터 저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이제까지의 프란체스코 전기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한다. 저자는 프란체스코가 본래 노래나 연극 등에 재능이 많았음에 주목한다. 즉 주교와 군중이 모인 앞에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육친의 아버지에게 돌려드리는 퍼퍼먼스와 대사는 모두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하나하나 주의 깊게 생각하여 연출된 것일 개연성이 짙다고 한다. 아마도 그 광장을 둘러싼 건물의 어느 2층 창가에서 어린 키아라는 이 장면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프란체스코란 본명을 받은 조카도 자신 안에 내재된 예술적 재능을 잠재우지 말고 꽃피우길 바라며... 키아라도 그 옛날 키아라가 그 광장을 둘러싼 어느 집 2층에서 프란체스코를 눈여겨 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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