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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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6

 

참기 힘든 엉덩이와 다리의 통증으로 다시 아침 일찍 서둘러 전철로 망원동을 찾다. 전철을 탈 때마다 일종의 위기감으로 긴장한다. 언제 잠깐 방심하여 다리라도 어디에 걸리기만 하면 쓰러져 버릴 테니 말이다. 계단을 오를 때는 최대한으로 무게중심을 앞으로 둔다. 뒤로 넘어지면 대책이 없으니……. 그곳의 신경외과를 소개해주고 안내해주는 분이 없었더라면 아마 절대 가지 않았을 먼 거리다.

 

나름 하루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음악을 듣는다. 걸어야 할 앞길보다 걸어온 뒷길이 훨씬 길 것을 알기에 자주 지난 일에 마음은 배회한다.

 

특히 음악을 들을때는 로마의 내 방 Casa venti quatro 로 돌아가는 듯 하다. 본관 24호실. 내가 로마에 머물던 기간 동안 살았던 예수고난회 로마총본부 수도원의 방 번호다. 이곳이 나의 침실이요, 공부방이며 특히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다. 한 달 용돈이 십만 리라, US 달러로 90불 정도고, 버스비가 800리라. 당시 독일의 유명 음반사 Deutsche Gramaphone에서 나오는 클래식 카셑 한 개가 18,000 리라였다. 나는 용돈을 아껴 한 달에 한 개씩 클래식 카셑을 샀고 그날은 헤드폰으로 몇 번이고 콘체르토를 듣곤했다. 24호, Coro(가대, 성당), Angelicum(도미니꼬회 대학)을 쳇바퀴처럼 맴돌며 살던 시절이었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가?

 

If your mind isn’t clouded by unnecessary things,

this is the best season of your life. 다만 확실히 그때 느끼던 행복감의 밀도가 지금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젊음이다. 어느 시인의 절창처럼 그것이 뼈마디가 시리게 될 인연이 될지라도!

 

뼈를 깎는 노력이야말로

아름다운 청춘이어라

나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이리도 뼈마디가 시린가

 

은사이신 백민관 신부님께서 Alzheimer 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현인이라고 생각했던 분인데…….그렇게 우리의 세월은 한숨과 눈물 속에 나는 듯이 가버린다. 날 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지혜를 얻게 하소서!

 

백 신부님이 하루는 강의 중에 옆길로 새시어, 당신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는 이유가 마칠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던 것이 백 신부님은 그 말씀 이후로 근 30여년을 더 살고 계시는 중이다. 그런 걸보면 남은 시간의 불확실성은 제쳐두고 뭔가를 시작하는 게 날 수 셀 줄아는 지혜를 얻는 길일수도 있겠다.

 

한번은 Maurizio Pollini 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비록 피아노는 못 치지만 나의 타이프라이터 자판은 나의 건반이다. 타이프라이터든 컴의 자판에서든 두보의 시처럼 사람을 놀라게 할만한 글이 나온다면 폴리니의 건반만 못할 것도 없다고.

 

시성 두보(杜甫, 712∼770)를 정성(情聖)의 시인이라고 한다. 인간의 정을 형상화하는데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런 두보가 평생 가슴 속에 품었던 말은, "語不驚人 雖死不休 (어불경인 수사불휴),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 였다 한다.

 

그건 그런데 나는 여직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아다지오처럼 여러번 들어도 새로운 감흥을 주는 강론을 들어본적이 없는게 문제다^^

 

語不驚人 雖死不休 (어불경인 수사불휴)를 좌우명으로 힘이 있을때까지 자판을 가까이 하는것도 괜찮은 프로젝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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